[기고]강형기 충북대 교수…명분없는 이합집산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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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통령 선거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중에 상당수의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정당이라는 말을 갈아탔다.

대선에 가려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한 틈새에서 또하나의 정치행위가 이루어진 것이다.

자치의 논리로 볼 때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씨앗이다.

지방의 정치적 정서는 나라전체의 정치풍토를 형성하는 기본이 된다.

그리고 지방의원은 정치세계의 풀뿌리이며, 단체장은 이러한 지방의원들의 행동반경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대선 기간중에 이들이 행한 당적 변경의 의미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당적변경이 이념과 철학.지조도 없이 다음의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이합집산의 시작인가, 아니면 정치적 신조와 정책 그리고 지역의 이익을 위한 결단이었는가는 유권자들이 다음 선거로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판단에 앞서서 다음과 같은 기본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째, 지난 지방선거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정책이나 인물보다는 정당을 보고 투표했다.

중앙정치를 보는 시각으로 투표를 했고, 그 덕택에 당선된 사람도 많았다.

일부지역에서는 중앙정치에 대한 냉소가 무소속 단체장을 대거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러므로 자신을 당선시켰던 정당을 등진 이유, 그리고 무소속이야말로 지역을 발전케하고 지방자치의 이념에 합치한다던 그 외침에 대한 설명은 분명해야 마땅하다.

줄서기였던가, 살신성인의 결단이었던가, 영합이었던가.

둘째, 이들의 당적 변경은 주민이 선택한 지역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우리 주민들은 지방의원에게는 도장을 맡기고 단체장에게는 통장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양자가 경쟁하도록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체장의 당적변경은 대체로 의회의 다수의석과 합치되는 방향을 택했는바, 이러한 일당지배구조는 주민이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주민들은 지도자의 선택행위와 처신에 대해 그 인과관계를 따져가면서 평가하기보다는 감상적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최근 우리 유권자들에게는 정치를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즐기려는 관객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참여의 유효성 상실감에서 싹트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는 먼곳이 아닌 내자신과 내이웃에서 비롯한다.

이웃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방관하고 지역의 정치행위를 관람하듯 보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무 말없이 관람만 해야하는 '극장화' 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지역에서 극장화한 정치는 곧장 나라의 정치풍토를 규정하게 된다.

강형기 <충북대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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