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잣대 세우기 벅찼던 1년…'대권무림'을 마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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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18일 밤 마포 한 호텔. 저녁 7시쯤부터 낯익은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16층 객실엔 국민회의 인사들이, 9층엔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개표 결과를 숨죽이고 지켜봤다.

기자는 양쪽을 오가며 알은 체를 해야 했다.

한쪽의 웃음은 다른 한쪽의 눈물을 의미했다.

기자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비가 오면 기와장수 아들을, 해가 나면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한다던 노모의 심정이 꼭 그것이었다.

밤 9시가 넘어서자 명암은 분명히 갈렸다.

광주의 개표율이 가장 저조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검자가 회창객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승부는 났다.

기자는 회사로 돌아왔다.

대권무림의 최종 원고를 작성해야 했으므로. 대권무림은 '평범한 30대 사내의 소박한 - 아니 제멋대로 정치읽기' 였다.

그것을 무협에 빗댄 것은 일각의 지적처럼 정치판을 희화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무협 (武俠) 은 무술 (武術) 과 협의 (俠議) , 두 단어의 조합이다.

무협은 기본정신이 파사현정 (破邪顯正) , 사악함을 깨뜨리고 올바름을 구현하는 것이다.

무협은 그래서 권력의 속성과 많이 닮아 있다.

무는 힘이고 협은 그 힘을 올바로 쓰는 마음이다.

우리 정치권에도 무와 협이 살아 있는 세계가 펼쳐지기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 연재물의 의도였음을 밝혀둔다.

그럴 듯한 이유는 댔지만 의욕만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각당 대선캠프를 기웃거리고 지금까지 이름도 잘 모르던 사람들을 만나고, 일면식도 없던 당직자들을 불쑥 찾아나섰다.

그러나 백면서생이 갑자기 최강의 무공을 익히고 최절정 고수가 되는 것은 삼류 무협지에서나 가능한 일. 정치판은 생각보다 거대했고 상황은 복잡다기했으며 예측은 불가능했다.

지난 3월 연재를 시작한 이래 형평과 객관의 잣대는 끊임없이 기자를 짓눌러왔다.

그랬다.

취재도 글쓰기도 아니었다.

1년 가까이 끌어온 연재중 기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개인의 호오 (好惡) 와 가치판단과의 싸움이었다.

의도가 그렇지 않았음에도 오해와 항의가 잇따랐다.

사안도 민감했고 독자도 민감했다.

필자도 민감해질 수밖에. 잣대를 세워야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제 겨우 세번째 선거다운 선거를 치른 우리 언론은 그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고민끝에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면 그가 물러나는 5년후 지금과 세상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를 생각했다.

기자의 글쓰기는 철저히 이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연과 친분의 고리가, 그리고 소소한 이해와 관계가 수시로 기준과 잣대를 흔들어 댔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알게 모르게 위축돼 가는 필봉을 느껴야 했다.

연재를 끝낸 지금 애초의 원칙을 백프로 지켰다고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승자가 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대통령 선거가 갖은 우여곡절 끝에 끝났다.

그리고 대권무림도 끝났다.

필자로서 꼭 하나 남는 궁금증. 새 무림지존이 된 대중검자가 퇴임하는 5년후 세상은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모쪼록 그 모습이 지금보다는 밝은 빛깔로 칠해져 있기를.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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