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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김종필·박태준 일등공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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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대통령' 을 만든 사람들은 크게 두 그룹이다.

金당선자와 고락 (苦樂) 을 같이 해온 당내 인사들이 한 그룹이고 DJT연합에 의해 외부에서 도운 사람들이 다른 한 그룹이다.

金당선자는 14대 대선에서도 입증됐듯 8백만표쯤을 '갖고' 있다.

여기에 2백30만표를 보탠 것은 김종필 (金鍾泌.JP) 자민련명예총재의 공이 절대적이라는 평가다.

충청권의 압승은 물론 보수층에 金당선자의 거부감을 희석했다.

JP는 후보를 양보한 후 金당선자의 취약지를 골라 다니며 80차례 이상의 유세에서 '김대중대통령' 을 부르짖었다.

뒤늦게 DJT연합에 합류한 박태준 자민련총재의 공도 크다.

DJ가 이번에 영남권에서 두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朴총재를 필두로 한 박준규 (朴浚圭).박철언 (朴哲彦).김복동 (金復東) 의원등 자민련내 TK지역 인사들의 공이 크다.

야구로 치자면 '대구에서 해태를 응원하는 용기' 를 보였다.

통추에서 합류한 김원기 (金元基) 선대위상임고문과 김정길 (金正吉).노무현 (盧武鉉) 부총재도 같은 경우다.

공신대열에 김용환 (金龍煥) 자민련부총재와 한광옥 (韓光玉) 국민회의부총재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복잡다단한 양당의 후보단일화 협상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단일화 성공에는 김종필의장의 30년 지기인 국민회의 김인곤 (金仁坤) 의원의 역할도 컸다.

득표전략의 구상에서 실현까지 전과정을 金당선자와 함께 한 국민회의 내부의 핵심인사들로는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종찬 기획본부장.김원길 (金元吉) 정책위의장.이해찬 기획본부부본부장.임채정 (林采正) 정세분석실장.김경재 (金景梓) 홍보위원장, TV토론을 준비한 김한길의원과 '북풍' 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천용택 (千容宅) 의원 등이 꼽힌다.

국민회의의 최고 작전본부는 비공식기구인 '전략자문회의' 였다.

6공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김중권 (金重權) 씨가 사회를 보고 8인 등 당의 핵심인사가 참여하는 사실상의 사령부였다.

박상천 (朴相千) 총무와 정동채 (鄭東采) 전비서실장 등 방송대책반은 시종 미디어선거를 주도했다.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과 박지원 (朴智元) 총재특보도 빼놓을 수 없다.

鄭대변인은 방송연설 연사와 거리유세 찬조연사 등으로 서너명몫을 했다.

朴특보는 언론계를 열성적으로 챙겼다.

부총재급 인사중 서울선거총책을 맡았던 김상현 (金相賢) 고문과 김근태 (金槿泰).정대철 (鄭大哲).박상규 (朴尙奎) 부총재및 비서실장을 겸직한 유재건 (柳在乾) 부총재도 열심히 했다.

金.鄭부총재는 '파랑새 유세단' 을 맡아 수도권 일대를 누볐다.

朴부총재는 金당선자의 손이 닿지 않는 취약분야인 군.검.안기부인사의 영입을 주도했다.

柳비서실장은 '유순한' 인품으로 후보 주변을 잘 다독거렸다.

장성원 (張誠源) 기조실장.이상수 (李相洙) 지방자치위원장.이협 (李協) 유세위원장.신낙균 (申樂均) 부총재.정세균 (丁世均) 연청회장도 제몫을 다했다.

실무선에선 배기선 (裵基善) 기획본부전략팀장.윤흥렬 (尹興烈) 메시지팀장.전병헌 (全炳憲) 홍보위부위원장 3인방이 신문.방송광고에서 한나라당을 압도한 숨은 주역이었다.

그리고 가신 (家臣) 들이 있다.

한화갑 (韓和甲).김옥두 (金玉斗).남궁진 (南宮鎭).최재승 (崔在昇).설훈 (薛勳).윤철상 (尹鐵相) 의원과 이수동 (李守東) 아태재단행정실장 등이다.

김현종.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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