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모병 겉과 속] '해군은 전쟁터 안 가…거짓말' 이라크·아프간 참전했던 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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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이라크 참전한 뒤 제대한 에드워드 김(왼쪽)씨와 조셉 장씨가 당시 파병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미주중앙 #. "미 해군에 가면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없을 거라던 모병관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프간과 이라크전에 참전 후 2005년에 제대한 에드워드 김(26)씨는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밤이면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제대 직후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정서 불안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롱비치 베테란스 병원에서 1년간 심리 치료를 받았다. 대잠 초계기 P-3에 탑승해 소나(수중음탐장비) 운용을 보직으로 맡았지만 전투지역에 폭탄을 투하한 뒤 첨단 카메라로 사상자를 확인하는 일도 겸했다. 갈기갈기 찢겨진 시신과 울부짖는 부상자를 확인해야 했던 김씨에게 이 일은 '정신적 충격' 그 자체였다.

또 2005년에 이라크로 파병된 조셉 장(34)씨는 "무장반군이 박격포를 쏴 제 숙소에서 불과 10~15m 근방에 떨어진 것만해도 4~5번이었다"며 "제대 후에는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서 한동안 운전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 "참전의 후유증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어요."

윤모(56)씨는 지난 14일 부대로 복귀하는 아들을 바래다 준 뒤에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속한 해병 부대는 내달 초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다. 직접 전장으로 떠나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2005년 8월에 이라크로 파병된 아들은 7개월간 복무하면서 무장단체들과 숨막히는 전투를 벌여야 했다.

아들은 로켓포가 떨어지고 동료의 주검을 지척에서 지켜봐야 했다. 문제는 휴가를 받아 집에 왔던 아들의 이상한 행동이었다. 아들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전쟁의 환청과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교회 생활을 관두게 됐다.

[미주중앙 : 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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