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경제 성장 주역” vs “부패한 포퓰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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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친나왓(60) 전 총리는 지배 엘리트와 서민층 사이에서 평가가 크게 갈린다. BBC방송은 그에 대해 “태국 정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탁신은 총리 재임 시절(2001~2006년) 저소득층 무상 의료서비스·무상교육, 3년간 농가채무 동결, 500억 달러의 사회기반시설 확충 사업 등으로 경기 상승을 이끌었다. 2001년 4.9조 바트였던 태국 국내총생산(GDP)은 2006년 7.1조 바트로 크게 늘었다. 이 덕에 절대 빈곤층이 크게 줄었고 국민 생활수준도 한 단계 올라섰다. 탁신 지지자들이 여전히 그에게 향수를 갖는 이유다. 반면 그를 비난하는 쪽에선 ‘부패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 독재자’이고 ‘권력형 부정부패의 상징’이라고 혹평한다. 기존 지배 엘리트에게 탁신은 함께 갈 수 없는 청산 대상인 것이다.

탁신은 1949년 태국 북서부 치앙마이의 부유한 비단 장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찰과 교수를 거친 그는 1990년 시작한 무선전화 통신사업으로 재산을 불렸다.

94년 외무장관에 임명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뒤 98년 ‘타이락타이(TRT)’당을 세웠다.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으며, 2005년 선거에서는 75% 이상의 의석을 차지해 단독정권을 수립했다. 이를 기반으로 급진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자 기득권 세력이 반발했다. 특히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는 그의 언사는 지배층의 결집을 불렀고, 왕실과 군부의 거부감을 샀다.

부정부패와 독직 혐의로 위기에 몰리던 탁신은 2006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체류하던 중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물러났다. 지난해 태국 대법원은 부패 혐의를 인정해 그에게 2년형을 선고했으나 탁신은 귀국하지 않은 채 해외에서 맞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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