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경제 좌충수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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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금융.외환위기로 맞게 된 '부도위기' 경제가 IMF 구제금융으로 '법정관리' 경제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아예 '자살골' 경제로 치닫고 있다.

금융.외환위기가 닥친 것부터 그렇다.

한국을 믿지 못해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달러를 뽑아가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덩달아 주식을 팔고 달러 사재기를 함으로써 끝없는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으로 만든 것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외국인이었지만 위기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은 우리 자신이라는 얘기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는 외국 사람이 아까운 한국 기업의 주식을 헐값에 사갈 것을 배아파하고 있다.

은행은 어땠나.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지니 대출활동에 신중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가 부실채권을 사주고 예금전액 환불까지 보증하는 '혜택' 을 입고 있는 지금도 은행들은 본연의 임무, 즉 정상적인 대출기능까지 포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멀쩡한 기업까지 흑자도산시켜 오히려 은행 부실화를 자초하고 있다.

예금주도 마찬가지다.

소문 하나에 너도나도 은행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문열기 무섭게 돈을 빼려고 난리를 편다.

아무리 정부가 원금과 이자를 책임진다고 해도 '제 목조르기' 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

멀쩡하던 은행도 할 수 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사태를 스스로 재촉하는 것이다.

소비자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생활에 거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환율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저성장 때문에 일자리가 불안해지니 소비 위축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하루아침에 합리적인 소비생활까지 포기한다면 위축된 내수마저 꺼져버리고 만다.

멀쩡할 수 있었던 소비자 자신의 일자리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IMF 체제 때문에 가라앉는 경제를 완전히 주저앉히려고 온 국민이 '애국심' 을 발휘하는 데는 '허리띠 졸라 매기' 를 외쳐 온 정치권이 큰 몫을 했다.

또 그들은 금융개혁 등 제 해야 할 일을 팽개친 것으로 부족했던지 이제는 IMF와의 약속이행을 놓고 입방아를 찧어 대외신뢰도 추락과 위기 악화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우리가 IMF에 약속한 것은 경제 '규모' 를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경제 '성장의 속도' 를 늦추겠다고 한 것뿐이다.

그것은 정부.기업.소비자 등 사회 곳곳의 부실을 말끔히 하고, 각자 제 분수를 찾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경제자전거' 의 페달질을 포기할 것까지는 없다.

'자살로의 민족 대행진' 은 당장 멈춰야 한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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