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새로운 국가경영 전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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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 (IMF) 의 긴급구제금융 지원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수출입이 중단되는 등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선진국 진입 기대로 부풀어 있던 한국경제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적절한 국가경영전략을 세우고, 시행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 정부의 무책임한 경제운용이 한몫을 했지만 그 뒤에는 오랜 구조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드디어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소위 '한국형 모델' 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지 오래됐음을 의미한다.

한국형 모델은 흔히 외형적인 면만을 파악해 정부 주도의 경제운용과 높은 무역장벽을 통한 보호무역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다른 데 있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유능한 관료집단, 높은 국민 저축률,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었고, 국제경제환경으로는 안정된 해외시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국 및 동남아 등의 경쟁국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0여년간 과연 한국형 모델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경제성장의 추진력은 사라지고 저해요인만을 부둥켜안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은 지난 10여년동안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국가경영에 있어 동맥경화현상을 보인 지 오래다.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 관치금융, 재벌위주의 경제운용, 구시대적 교육제도, 민주화이후 폭발된 국민들의 이기주의 등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결속력이 와해돼 폭발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80년대 이후 세계화시대가 전개되면서 우리는 경쟁전략을 바꾸고 국내경제 운용방식과 구조를 과감히 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치유과정이 가져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방치하면서 쉽게 넘어가려 했고 결국은 현재의 경제 파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주장만 있고 실천이 없던 개혁 방안을 열거해보면 수도 없이 많다.

교육제도 개혁은 형식적인 입시제도 변형에만 중점을 두어 국제경쟁력 있고 창조적인 인력 만들기에 실패했다.

비전문적인 관리자만을 선발하는 고시제도, 경직된 관료제로 인해 관료집단의 국제화와 전문화를 이루지 못했다.

관치금융 해소 및 금융기관의 독자성 강화에 실패해 투자재원의 원활한 흐름과 시장기능을 왜곡시켰다.

이와 함께 국민들의 과소비와 집단이기주의는 높은 임금상승률과 이에 따른 생산성 저하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향해야 할 새 국가경영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형 모델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국제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의 기초를 다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국민들이 납득하고 따라올 수 있는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운영의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 비대해진 정부기구와 관료사회를 대폭 축소시킴과 함께 기존의 고시제도를 보완해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경험을 축적한, 문제해결력 있는 전문인력을 적극적으로 발탁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국민들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지금까지의 과소비를 억제하고 저축률을 높여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지양하면서 한계산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국제시장에서의 21세기 비교우위산업을 새롭게 찾아, 전문화.특화전략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돼야 한다.

산업구조 조정은 단기적으로 대량 실업사태를 유발해 근로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경쟁력있는 새로운 기업이 설립되고 성장해 고용기회를 확대시켜줄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다음 5년간은 노사 갈등을 자제하고 최대한 협력.양보하는 가운데 우리 제품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체질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정부.기업.금융기관.국민 모두가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국제규범과 제도에 적응해나가고, 경제.사회 전반의 기본을 다져나갈 때 현재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고, 경제회생뿐만 아니라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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