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달러 전달했나 … 16시간 공백 ‘시애틀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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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0일 서울공항.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대통령 전용기에 올랐다. 과테말라에서 열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권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은 다음 날 출발한 것이다.

전용기는 6월 30일 오전 10시(한국시간 7월 1일 오전 3시) 경유지인 미국 시애틀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4시 숙소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했다. 행사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다음 날 오전 9시50분 과테말라로 떠났다. 출발 전까지 공식 일정은 없었다. 16시간 동안 노 전 대통령의 동선이 공백으로 남은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누굴 만나고 무엇을 했을까.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100만 달러의 용처를 밝히기 위해 검찰이 풀어야 할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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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6월 26~28일 친인척·직원 131명의 명의를 동원해 100만 달러를 환전, 출국 전날인 29일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집무실로 전달했다. 출국 전 급하게 달러를 마련한 이유가 시애틀 방문 일정과 관련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건호에게 집을 사 주려고 하니 100만 달러를 준비해 달라”는 노 전 대통령의 전화를 25일에 받았다는 박 회장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시애틀에서 미국 유학 중이던 아들 건호씨를 만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100만 달러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유학비나 생활비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건호씨는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스탠퍼드대에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검찰은 권찬호 전 시애틀 총영사를 소환했다. 권 전 총영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다. 그는 앞서 노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냈던 경력이 있다. 검찰은 권 전 총영사를 상대로 돈 전달 의혹 등을 조사했다. 건호씨의 경호를 담당했던 이모 경호관도 조사했다.

권 전 영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시애틀에서 건호씨를 전혀 보지 못했고, 100만 달러를 대신 전달한 적도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모 경호관은 검찰에서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철재·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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