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방 협진체계 발전시키려면 학문적 교류부터 시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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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금만 일해도 쉬 피곤해져 K대 한방병원을 찾은 직장인 김모씨 (54.강남구 삼성동) 는 담당 한의사로부터 "간기능이 떨어졌다" 는 말을 들었다.

겁이 난 김씨는 인근 B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등 정밀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항체도 있을 뿐 아니라 간수치도 정상인 지극히 건강한 간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정됐다.

어느 쪽이 오진을 한 것일까. 결론은 '아니다' 다.

한방에서 말하는 간기능저하는 양방의 간염이나 지방간이 아닌, 중풍발생의 위험성이 높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소화를 담당하는 서양의학의 간은 동양의학에선 간 (肝) 보다 오히려 비 (脾)에 가까운 장기라는 것. 용어조차 통일되어 있지 않은 이원화된 현행 양한방체계가 빚은 해프닝이다.

양방과 한방이 서로 협력해서 진단을 하면 소비자와 의료계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지금까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모색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 양한방 동시진료를 표방한 병원마저도 대부분 환자를 위한 협진보다 수익증대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 즉 양의사는 의보적용이 안되는 고가의 한약처방을 위해, 한의사는 첨단기계에 의한 질병진단을 위해 상대편 진료영역을 활용하고 있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 즈음하여 대한의학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양한방 협진체계의 발전방향에 관한 심포지엄' 을 갖고 양극화된 현행 의료체계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들을 논의하는 첫자리를 마련해 관심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제대로 된 양한방협진을 위해선 의학용어 통일등 교육과 연구는 물론 면허등 제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뒷받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했다.

경희대한의대 이종수교수는 "의사와 한의사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의학용어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 주장했다.

의학용어의 통일이 선행돼야 학문적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 연세대의대 전세일동서의학연구소장은 의대나 한의대간 상호 편.입학 허용과 대학원 과정의 동서의학과 신설을 제시했다.

이와함께 학부생간 교류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의대생들에게 한의학 강좌를 듣게 하거나 한의대에 의대생 편입을 허용하는 것이 그 예. 결국 양한방이 서로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는 학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협진을 이룩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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