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뉴스 <10> 환갑 맞은 나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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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재 기자

나토 창설 60년을 맞아 회원국 정상들이 4일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인 라인강에 놓인 유럽대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스트라스부르 AP=연합뉴스]


나토의 출발점은 1948년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5개국이 체결한 브뤼셀방위협약이다. 회원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가입국들이 공동으로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가 합류해 집단방위체제가 강화됐다. 49년 4월 4일에는 기존 7개국 외에도 이탈리아·포르투갈·노르웨이 등 5개국이 추가돼 총 12개국이 미국 워싱턴에서 조약을 맺어 나토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66년 프랑스가 탈퇴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나토는 90년대 초 냉전이 끝날 때까지 소련을 주축으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 맞서 서유럽으로 공산주의가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

냉전 종식 이후 주적이 없어진 나토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중부와 동유럽에서 독립국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분쟁이 발생하자 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이후 WTO 회원국이었던 나라들을 나토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 체코·폴란드·헝가리 등 주요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했다. 특히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후 테러가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자 대테러 전쟁에도 적극 가담했다. 이를 계기로 활동 영역을 유럽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서남아시아 지역으로 넓혔다. 이달 초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합류해 회원국은 총 28개국으로 늘어났다. 현재 우크라이나·그루지야·마케도니아 등도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동진정책’에 러시아와 갈등

미국의 입김이 센 나토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EU와의 갈등이다. EU가 자체 방위력을 강화하면서 유럽 안팎에서 나토와 역할 충돌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최근 유럽안보국방정책(ESDP)을 앞세워 방위력을 강화하고 있다. EU는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등 역내외에서 활발하게 군사행동을 하고 있다. 반면 나토는 군사동맹체에서 탈피해 정치·외교적 역할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측은 중첩되는 역할로 인해 세(勢) 싸움이 불가피한 입장이다. 이 때문에 최근 나토와 EU는 보완 관계가 아닌 경쟁·대립 관계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나토가 꾸준히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자 러시아와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오히려 유럽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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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43년 만에 재가입

하지만 나토는 최근 호재를 맞았다. 샤를 드골 대통령 집권 당시 나토를 탈퇴했던 프랑스가 3월 복귀한 것이다. 그동안 나토는 유럽 대륙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영국은 항상 미국의 정책에 동조했고 프랑스는 비회원국이어서, 실질적으로 유럽 대륙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는 독일뿐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재가입으로 회원국들은 유럽 내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좀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소프트 파워’를 중시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영향력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전쟁 계기로 위상 강화

49년 출범한 나토가 위상을 강화하는 데는 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이 소련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공산주의 세력이 유럽에서도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나토 간의 실질적인 협력은 거의 없었다. 나토의 역할과 활동 범위가 아시아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나토는 유럽 외 지역에서 협력을 강화할 국가들을 선별해 ‘접촉 국가(contact countries)’로 선정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이 이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나토와 공동으로 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핵 확산 금지와 대테러 대책,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창설 60주년 정상회의 성과는

창설 60주년을 맞은 나토 정상회의가 이달 3일부터 이틀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독일의 켈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스트라스부르-켈 정상회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테러전쟁 지원 문제였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추가 파병 요구에 난색을 표해 왔다. 이에 따라 이번 정상회의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유럽 국가들은 전투병을 제외한 지원군 성격의 병력 파견에 동의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신아프가니스탄 전략’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에 따라 최대 5000명의 유럽 병력이 아프가니스탄에 추가 파견된다. 이들은 현지 경찰 훈련과 치안 유지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올여름 대선을 치를 예정이어서 어느 때보다 혼란이 예상된다. 영국은 900명, 독일과 스페인은 600명씩 파병키로 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도 추가 병력을 보낼 계획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차기 사무총장도 새로 뽑았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전 총리가 올 8월부터 향후 4년간 나토를 이끌 사무총장으로 지명됐다.

나토는 또 러시아와의 대화를 재개하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나토의 세 확장으로 불편해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나토는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보다 회원국 간의 결속 강화 방안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러시아가 제안한 새로운 안보조약은 나토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토를 그 안에 참여시키려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한편 이번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도시에서는 반나토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수천 명에 달하는 시위대의 주장은 “나토는 전쟁을 의미한다. 환갑을 맞은 나토를 해체하라. 나토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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