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세계 무역자유화 후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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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7월초 동남아 통화위기가 시작된 이후 무역자유화의 후퇴 조짐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 아시아 금융위기의 부작용이 번지면서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행돼온 전 세계적 무역자유화는 심각한 시련에 봉착할 수 있음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메르코수르 (남미공동시장) 의 추진을 통해 무역자유화의 기치를 들었던 브라질.아르헨티나가 최근 상당수 품목에 대해 수입관세를 올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10월에는 말레이시아도 건설장비와 일부 전자제품등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밀어붙이던 '신속 협상권 (패스트 트랙)' 의 추진이 백지화된 것도 선진국들의 시장개방 압력을 받아왔던 나라들에게 보호무역주의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간주하고 있다.

무역자유화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분수령은 8일 시작되는 세계무역기구 (WTO) 의 금융.서비스 무역협상이다.

아시아.남미등에 대한 금융기관의 진출 확대를 노리는 미국.유럽연합 (EU) 국가들은 최근 아시아 금융위기때문에 개도국에 대한 시장 개방 압력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있다.

생각은 굴뚝 같지만 상대방이 워낙 혼란에 빠져 있어 압력을 가할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같은 입장 차이는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APEC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미 국제경제연구원 (IIE) 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APEC회원국들은 내년중 9개 분야에서 관세를 추가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고 전한다.

그러나 APEC은 금융.서비스 부문에 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말레이시아등 개도국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무역자유화가 앞으로 계속 진전되느냐, 아니면 후퇴하느냐의 관건은 아시아와 남미의 경제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달려있다.

멕시코는 지난 94년말 페소화 위기 뒤에도 관세를 인상하거나 다른 어떠한 보호주의적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의 파고는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아시아 경제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데다 일본 경제의 명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어느 쪽도 자유무역 확대에 좋지 않은 요인이다.

더욱이 아시아국가들은 미.EU등으로부터 수입을 늘리고 시장을 대폭 개방하라는 거센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국가들은 수출이 생각대로 잘 안될 경우 관세 인상등을 통해 보호무역주의의 품 속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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