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비행…창공서 펼치는 인간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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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요즘 하늘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비행을 취미로 삼는 초경량 비행기 동호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있고, 비행교관을 직업으로 택하는 젊은 여성들도 속속 등장했다.

얼마전 상영됐던 영화 '아름다운 비행' 에선 어린 소녀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하늘로 날아 올라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여기에 커다란 획을 긋는 소식 하나 - .국내 최초로 민간 곡예비행팀이 창설된다.

경비행기 동호인등이 결성한 한국항공문화개발원이 그 주체. 김봉민 (31) 씨를 리더로 하는 3인조팀과 재미교포 이진형 (28.여) 씨의 솔로팀을 출범시켜 우리나라에 곡예비행의 새 장을 여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 여름부터 전국의 하늘을 무대로 묘기를 선사한다.

이를 위해 다음달 미국 곡예비행 전문학교에 들어가 3개월간의 훈련을 받고, 또 3개월의 한국지형 적응연습을 거친다.

비정상적인 조작법을 구사하는 곡예비행. 여기서 우린 비행기를 너무 사랑했고, 결국 애기 (愛機) 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진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말을 떠올려본다.

"비행기는 목적이 아니고 쟁기와 같은 하나의 연장이다. 우린 비행기를 통해 직선을 배웠다." 그러나 이제 곡예비행을 통해 다시 비행기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회귀한다.

날고 싶다는 인간의 '무모한' 꿈이 라이트 형제에 의해 현실로 나타난 건 불과 한 세기전이었다.

이것이 하나의 '연장' 처럼 흔해지기까진 실로 순식간이었건만. 곡예비행은 어딘가를 향해 돌진하는 직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곡선을 보여주고 끝없이 솟구치거나 추락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한계에 도전한다.

새로운 세계 속에선 사람들의 욕망이 혼돈을 거듭한다.

"묘기 비행을 하다보면 자꾸 낮은 곳으로 가고 싶어집니다. 땅으로 땅으로 접근하고 싶은 열망이 강해지는 거죠. " 팀원 우수길 (31) 씨의 얘기다.

애당초 날고자 했던 마음은 높은 곳을 향한 꿈이었을 터. 하지만 조종석에 오르면 비현실의 공간인 구름위보단 삶이 꿈틀거리는 지상이 그립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바람이 종종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지난 7월 벨기에 해변 휴양도시 오스텐데에서 열린 국제 에어쇼에선 비행기 한대가 급강하 도중에 폭발, 8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6월 미 콜로라도의 에어쇼에선 한 노장 비행사가 F - 86전투기 (우리나라에선 '쌕쌕이' 란 이름으로 알려진 기종) 로 1천5백m 상공에서 시속 7백68㎞로 수직강하하다 기수를 돌리지 못하고 지면에 충돌했다.

최첨단 전투기가 곡예 도중 두동강나거나 땅에 그대로 꽂히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

이 모든 것이 정상비행을 벗어나 극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해 서울 에어쇼에 참가했던 공군 곡예비행팀 '블랙이글' 요원들의 얘기를 듣자. "여러대가 근접거리로 날아가는 편대비행에선 잠시도 편대원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곡예 기동중 계속 온몸을 짓누르는 중력가속도 (G - force) 와도 싸워야 합니다.

특히 초저고도에서 묘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형지물에 대한 부담이 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매력의 요체입니다." 비행기가 거꾸로 나는 배면비행에 대해 한 조종사는 "발을 천장에 묶어놓고 매달린 기분" 이라고 표현한다.

또다른 비행사는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순간 머리가 쭈뼛해진다" 고 털어 놓는다.

험난한 곡예비행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여기엔 자본의 논리가 담겨있기도 하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에어쇼엔 항공산업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계산이 숨어있고 곡예팀의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 역시 전투기의 성능을 과시하고 항공기술.비행기술을 자랑하려는 국가적.산업적 의도와 맞물린다.

이 번에 탄생한 곡예비행팀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민간비행단의 묘기 비행은 일반인들을 항공기 곁으로 바짝 끌어당길 것이며, 이것이 우리나라 항공관련산업의 발전에 토양이 돼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항공문화개발원 전영윤 (42) 사무국장은 내년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연간 50차례 이상의 묘기비행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한다.

"민간 곡예비행은 아기자기하고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 선이 굵고, 행동반경이 광활한 전투기 곡예비행과는 대비되죠. 시민들은 가까이 다가와 비행기를 만질 수도 있고 비행사와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하늘에 친근감을 갖게 되는 거죠. " 이들의 꿈은 세계 수준의 곡예팀으로 성장해 다음 세기의 아시아 하늘을 활보하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든 최고급 곡예기에 몸을 싣고서 말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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