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알키비아데스의 개 꼬리 같은 화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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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02면

‘노무현 생존 게임’이 본격화했다. 그는 궁지에 몰려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무현이가 멀지 않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전부”라고 단언한다.

노 전 대통령은 위기 탈출에 골몰하고 있다. 그 게임은 여론 탐색부터 전개된다. 그의 홈페이지는 통로다. 그는 사과문에서 “집(부인 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은 낯선 표현이다. 사투리에 담긴 순박한 여운이 있다. 다음 날엔 “제가 아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는 프레임은 같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성과 대조의 어휘를 단계적으로 선택, 교묘하게 배치하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그의 홈페이지 언어를 이렇게 분석한다. “변호사다운 상황 전개에 대한 고려가 담겨 있다. 알키비아데스의 개 꼬리 같은 초점 흐리기다.” 알키비아데스는 고대 아테네의 인기 있는 대중 정치인이다. “그가 비싼 개의 꼬리를 잘랐다. 비난 여론은 커졌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대로 됐다. 사람들은 개 꼬리 얘기를 하느라 나에 관한 더 나쁜 소문을 퍼뜨리지 못할 것이다.”(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노 전 대통령의 부인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달라졌다. “제 처를 버려야겠습니까”(2002년, 장인의 남로당 경력 논란) 때는 감쌌다. 이번엔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다. 그 바뀜에 비난이 쏠린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조롱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차단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사적인 돈 거래라는 인상을 어떻게든 주려 한다. 박연차 회장한테서 나온 600만 달러의 종착지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은 구체화하고 있다.

노무현 식 고해성사는 위기 돌파에 효험이 있었다. “내가 불법 모금한 자금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란 발언도 그렇다. 그 언어는 쟁점을 분산시키는 역공 전술이다. 그러면서 여론을 적과 동지로 가른다. 자기 편의 단합과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 발언에 대해 오래전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김영삼 정권 시절)은 이런 지적을 했다. 홍 전 수석은 권력과 돈의 관계를 잘 안다. “교통사고에서 노인을 친 것 하고 아이를 친 것 하고 무슨 차이가 있느냐. 불법은 불법이다. 한나라당은 식구가 많아 돈이 많이 간 것이고, 노무현 당은 체질과 숫자상 돈이 덜 갔을 것이다.”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행태에 익숙하다. 노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때 밀어줬고 90년대에 갈라졌다. 김 전 실장은 “젊은 시절부터 그(노 전 대통령)는 자기 생존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선전술과 위장에 능숙하다. 꾀가 많고 수도 많다”고 말했다.

생존 게임의 다음 수는 어떤 것일까. 노 전 대통령 측은 살아있는 권력과 비교하며 정치보복을 당한다는 식으로 서서히 반격하는 자세다. 야당 쪽에선 지난 대선 때 박연차 회장의 돈이 이명박 캠프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검찰 수사를 끝내자는 휴전의 메시지도 내밀히 나올 것이다. 사과문에는 이미 그런 의사가 깔린 듯하다.

다수 국민은 권력부패에 대해선 산전수전을 겪었다. 전·현 권력에 대한 분별력이 있다. 노무현 식 언어에 대한 학습도 충실하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반격은 초라한 동정심을 얻는 정도일 것이다. ‘밑천, 별놈, 깜이 안 된다’는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계산된 용어다. 도덕성 밑천은 거덜났다. 무능과 부패가 겹친 별놈의 정권이 돼버렸다. 재계의 세계적 위상과 평판에서 볼 때 박연차·강금원 회장은 깜도 안 된다.

1995년 12월에 ‘골목 성명’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저항했다. 그때 문민정권이 주도한 역사 전개의 긴박함이 감돌았다. 그 한쪽엔 군사정권 식 의리도 교차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예고된 상태다. 그가 나갈 때 여론 분위기는 어떨까. 밑천이 드러난 데서 오는 처량함, 측은함이 앞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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