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단체 싫다” 업종 연합체로 … 노동계 지각변동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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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하철 노조원들이 10일 저녁 민주노총 탈퇴 찬반 투표의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 노조는 68%의 찬성으로 탈퇴를 결의했다. [연합뉴스]

노동계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민주노총을 이탈한 인천지하철·인천공항공사·서울도시철도 노조는 민주노총의 핵심 조직이었다. 이들의 이탈은 민주노총의 쇠락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노동부가 상급 단체 탈퇴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탈퇴가 가속될 전망이다. 강경 투쟁을 일삼던 민주노총의 쇠락은 노동운동이 합리적으로 가는 전기가 될 전망이다. 탈퇴 세력 중 지하철 노조들이 연합체 형태로 별도 살림을 차리려고 준비 중이어서 양대 노총 구도가 깨지고 다극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노총 급속 약화=올 들어 NCC·영진약품 등 5개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이들은 조합원이 그리 많지 않다. 서울도시철도 노조는 조합원이 5400명, 인천지하철 815명, 인천공항은 700여 명이다. 민주노총에 메가톤급 충격이다. 서울도시철도 노조는 2002, 2003년 파업을 벌인 적이 있는 강성 노조다.

이들 3개 노조는 민주노총 핵심 조직인 공공운수연맹에 속한다. 여기 소속 광역시의 지하철 노조 등이 탈퇴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이대로 가면 민주노총을 받치는 세력으로는 금속노조와 전교조만 남게 된다.

◆제3의 길 가시화=서울도시철도공사 하원준 노조위원장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르면 다음 달에 서울도시철도와 인천·대전·광주지하철 노조 등 4개 지역 지하철노조가 ‘전국지하철노조연맹(전지연)’을 출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대구지하철노조는 올해 하반기에, 서울지하철(메트로) 노조는 내년에 가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와 인천지하철 노조의 이탈은 전지연을 위한 첫 단추를 꿴 것이다. 특히 서울도시철도 노조는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노조 연합체(전지연을 지칭) 가입에 대해 대의원들이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다. 서울지하철 노조의 정연수 위원장도 최근 끊임없이 민주노총을 비판하면서 전국지하철노조 연합체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전지연은 한국노총에도 가입하지 않는 독립적인 산별 노조를 표방하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논의된 제3 노총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성희 인천지하철 노조위원장은 9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양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 모두 희망이 없다. 그렇다고 제3 노총도 아니다. 그건 또 다른 상급단체일 뿐이며, 그보다 업종별 연합체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전지연이 출범하면 다른 업종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철강과 조선업종에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업종의 노조들은 2007년 말부터 수 차례 모임을 열고 회사별 정보와 업종별 매출액 추이 등을 교환하고 노사관계 발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합리적 노동 운동의 전환점=민주노총이 쇠락하면 상대적으로 한국노총이 힘을 받게 된다. 지난달 26일 세아제강이 1995년 민주노총이 생긴 이래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한국노총으로 옮겼고, 이번에는 인천공항공사 노조가 뒤를 이었다. 세아제강 권택봉 노조위원장은 “조합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하는 한국노총을 택했다”고 말했다.

전지연 같은 업종별 연맹체가 생기면 미국산 쇠고기 반대, 미군 철수와 같은 정치 이슈를 내세워 파업하는 일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지하철 부채 해결과 같은 업종별 문제점 해결과 근로자 복지 증진에 주력하게 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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