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선 후보가 당을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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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1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07년 민주당(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10일 결국 민주당을 떠났다. 이날 민주당이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전주 덕진 후보로 확정하자 그는 곧바로 탈당 기자회견을 했다. 여의도 민주당사에서다.

정 전 장관은 “잠시 민주당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직접 썼다는 회견문의 제목이었다. 그는 낭독한 A4용지 4쪽 분량의 회견문 대부분을 민주당에 얽힌 자신의 정치 역정을 소개하는 데 썼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2001년 정풍운동,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까지 두루 언급했다. 그는 “시기마다 당의 이름은 달랐지만 정치 인생 13년 동안 내 삶은 온전히 민주당 당원으로서의 삶이었다”며 “그러나 지금 옷을 벗고 나와 바람 부는 벌판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한때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함께 가자고 손 내밀었는데 설마 뿌리칠 줄은 몰랐다. 내민 손이 부끄럽고 민망하다”고 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정 전 장관은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정치를 하면서 제가 지은 업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후 전주로 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13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정치를 시작했는데 전주의 아들로서 다시 전주 시민 앞에 섰다”며 “제 마음은 상처받은 아들이 돌아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심정이다. ‘어머니,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리인을 통해 전주 덕진 선거관리위원회에 무소속으로 예비후보 등록도 했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의 회견 직전까지 공천 배제 결정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애썼다. 정 대표는 “19대 총선에서는 현 지역구인 진안-무주-장수-임실에 출마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정 전 장관 지지자들의 항의 시위와 일부 의원의 반발 속에 치러진 공천 최종 인준을 위한 당무위원회에서다. 그는 “절친한 동료이자 최고지도자 중 한 사람인 정 전 장관을 고향에 공천하지 못하는 심정은 너무나 아프다”며 “최고지도자 한 분이 수도권 지역구를 떠나 당선이 보장된 호남으로 가는 게 용인된다면 수많은 당원의 사기는 저하되고 공당의 원칙도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분란의 발단은 당 지도부와 협의 없이 ‘공천을 안 주면 무소속으로라도 나간다’ ‘나를 공천하지 않으면 사천이다’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 전 장관”이라고 지적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정 전 장관 측이) 386 정치를 비판하지만 김민석·안희정 최고위원은 지난 총선 때 출마 기회도 받지 못했다”며 “당 의장까지 하신 분이 원내 입성만을 위해 수도권도 아니고 호남으로 후퇴해 당 분열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받지 않도록 재고해 달라”고 말했다.

탈당 선언 뒤 지도부의 추가 반응은 없었다. 김유정 대변인이 “정 전 장관의 탈당과 출마를 막지 못해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논평을 낸 게 전부였다. 김 대변인은 “당 지도부는 민주당 후보를 전주 덕진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조윤선 대변인은 “정치를 시작한 고향에서 새 정치를 하겠다는 데 지역주의 부활을 알리는 게 아닌지 의구심만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시흥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백청수 전 시흥시장에서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보좌관을 지낸 김윤식씨로 교체했다.

임장혁·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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