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 앞둔 일본 미야자와전총리…금융불안 소방수로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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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78) 전총리가 일본 금융불안의 소방수로 나섰다.

그는 "자민당을 대표해 금융불안을 따지는 국회 예산위 대표 질문자로 나서달라" 는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간사장의 요청을 선뜻 받아들였다.

자민당 역사상 전직총리로서는 처음이다.

정치거물들은 막후에서 움직일 뿐 국회발언대에 좀체 나서지 않는 일본 정치관행과 대조적이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일본 매스컴들은 사회현안에 대해 즐겨 원로정치인들에게 자문 (諮問) 한다.

정치의 큰 흐름은 다케시타 노보루 (竹下登) 전총리, 개헌문제나 보수연합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曾根康弘) 전총리가 전문이다.

비록 단명 (短命) 총리로 끝났지만 경제에 관한한 미야자와가 단골이다.

금융불안이 불거지면서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가 요즘 가장 자주 만나는 인물도 미야자와다.

그는 지난달 29일 밤에도 미야자와를 총리관저로 초청, 자문했다.

미야자와는 불량채권 해소를 위해 재정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고 정치적 리더십 발휘가 중요한 만큼 직접 대 (對) 국민 설득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1일 중의원 예산위 답변에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예금자를 보호하겠다" 고 선언했다.

국회에서 답변을 듣던 미야자와는 "총리가 확실하게 잘 답변하고 있다" 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미야자와는 일본 금융기관의 고질병인 불량채권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불량채권을 예금보험기구에 넘기는 대신 ▶예금보험기구는 채권을 발행하고 ▶정부가 재정자금을 동원해 이 채권을 사들여야 한다는 이른바 '미야자와 구상 (構想)' 이 그것이다.

이 구상은 사견 (私見) 형식으로 발표됐지만 가장 현실적인 처방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장성도 이를 정책에 그대로 반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매스컴들은 "97년 늦가을 미야자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80세, 정계은퇴를 앞두고 금융불안 해소를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기회로 삼겠다" 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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