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자금지원협상 급진전 계기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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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IMF의 자금지원 협상이 급진전된 전기는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간의 긴급 전화통화였다고 30일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클린턴대통령이 전화를 해온 것은 지난달 28일 낮.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내던 그의 전화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안이 긴박했기 때문이다.

사안이란 서울에 와있는 IMF협상단의 지원요청과 관련된 것. IMF측은 지난주 재경원이 중심인 우리 협상단과 지원조건.규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실망한 것같다" 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특히 외환보유고의 부족이 위험수위에 처해 있는데도 우리 협상단은 전략상 그 심각성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를 눈치챈 IMF측은 한국은행쪽에서 직접 자료를 챙겼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경제 위기가 '일시적인 외화 유동성 부족에서 기인하고, 펀더멘털 (기초체력) 은 건전하다' 는 우리 협상팀의 주장에 강한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金대통령도 지난주 밴쿠버의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서 이런 기조로 연설한바 있다.

그러나 IMF측은 금융은 물론 실물쪽이나 펀더멘털도 허약하다는 쪽으로 결론지었으며, 이런 입장차이로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했다.

결국 우리 협상팀의 시각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한.미 정상간 채널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IMF측이 내린 것으로 이 관계자는 관측했다.

클린턴대통령은 IMF쪽의 급전을 받고 金대통령에게 진솔하게 한국경제 위기상황을 깨우치려 나선 것이다.

그는 "한국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같다.

구제금융 시간을 늦추기에는 심각한 상황" 이라는 요지의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협상팀이 제시한 거시경제 지표나 부실은행.종금사처리 조건이 안이하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던 것이다.

클린턴의 이런 권유에 "金대통령은 상당히 충격받은 것으로 안다" 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金대통령은 즉각 일본에 있던 임창열 경제부총리를 찾았다.

자존심 따지지 말고 강도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조기에 협상을 타결지으라고 지시했다.

林부총리가 29일 공항에서 "교역상대국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구조조정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며 방향선회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 밤부터 협상은 급피치를 올렸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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