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기자의 JOB 카페] 일단 출근 후 연봉 협상? 협상 깨져도 부당해고 아닙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연봉제로 임금 체계를 바꾸는 회사가 많아졌다. 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은 회사라도 경력직에 대해서는 연봉 계약을 요구하는 추세다. 실력이 아주 뛰어나면 많은 연봉을 받는 건 당연지사다. 이런 사람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처럼 입사를 조건으로 거액의 계약금을 웃돈으로 받기도 한다. 연봉액수를 두고 밀고 당기며 몸값을 올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입사자는 회사가 제시한 금액을 놓고 고민하다 조금 조정하는 선에서 합의한다.

그런데 연봉 액수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근하면 어떻게 될까. 근로자 입장에선 일단 입사해 일하면서 연봉 협상을 마무리하려 할 수 있다. 취업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요즘에는 이런 선택을 하는 근로자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지만 자칫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지난해 11월 사용자와 근로자 A씨 간에 ‘부당 해고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A씨는 2007년 9월 1일부터 회사에 채용돼 근무했다. 일하면서 회사와 본격적으로 연봉협상을 벌였다. A씨는 4000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2304만원을 제시했다. 밀고 당기는 사이 월급날이 지났다. 회사는 “회사 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한 달간 여유를 줄 테니 다른 회사를 찾아보라”고 말했다. 한 달 동안 일한 A씨로선 분할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A씨는 이후 출근하지 않았다. 얼마 후 회사는 A씨에게 “협상 결렬로 근로계약이 종료된다”는 통보를 했다. 발끈한 A씨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구제를 신청했다. 부당 해고로 판정되면 A씨는 회사에 복직되거나 상당액의 금전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법원에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도 같았다. 서울행정법원은 “회사에 채용돼 출근했더라도 연봉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근로계약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1월 19일). 따라서 해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식 근로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으므로 근로‘계약’ 종료(해고)가 아니라 근로‘관계’ 종료라는 해석이다.

참고로 인크루트는 연봉 협상과 관련, 신입사원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서류전형·면접을 통과하고 임금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취업만 됐으면’하던 마음이 ‘조금만 더 주지’로 돌변한다. 밀고 당기지 말고 차라리 ‘저 정도의 자질이면 얼마가 적당합니까’라고 영악하게 되묻든지, ‘얼마를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라. 직장인은 ▶이력서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인맥을 쌓으며 ▶자신의 성과를 수치화해 돈으로 환산해 보라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몸값은 현 직장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