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예감]하늘메운 철새 만추의 날갯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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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마도요. 크기 50~60㎝의 작은 새. 그러나 태평양을 건너 호주까지 8천㎞를 날아가는 대단한 녀석이다.

화성에 탐사선 보내는 인간들의 비행기술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마도요는 오늘도 힘차게 비상한다.

매년 살얼음이 얼고 몸이 움추려질 정도로 추워지면 '북녘의 진객' 겨울철새들이 어김없이 우리곁을 찾아온다.

석양을 등지고 넓은 호수위를 떼지어 노니는 기러기. 두루미. 고니. 청동오리. 도요새등의 군무 (群舞) 는 아름답다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 왜 힘들게 새를 따라 다닙니까.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나도 자유인이 됩니다. 힘든줄도 몰라요. 새가 살 수 없는 곳이라면 결국은 인간도 살수 없겠죠. "

"초겨울 들판위로 날아오르는 수만마리의 오리와 비둘기떼의 우는 소리는 대자연이 들려주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입니다. 천상의 하모니가 바로 이런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 지난 16일 충남서산 천수만 간척지에서 만난 한남대학교 야조회원들. 두터운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이경호군 (경영학2) 은 조류도감과 쌍안경.필드 스코프를 들고 드넓은 논밭을 누빈다.

이날 탐조활동은 매년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천수만을 찾아 날아온 철새들을 관찰하기 위해 모인 자리. 김현숙양 (불문과1) 도 쌍안경을 통해 새를 관찰하며 도감을 통해 확인하고 특징을 간단하게 메모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해마다 한반도를 찾아오는 새를 만나러 전국을 누비는 젊은이들이 있다.

야생조류탐사회 (야조회) .대학교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는 야조회는 현재 국내 8개 대학 (서울대. 이대. 한남대. 서울시립대. 단국대. 경성대. 대구대. 포항공대)에서 활동중이다.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야조회 회원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현재 한남대 야조회는 생태사진가 서정화 (35) 씨와 박종길 (고대대학원 산림자원과 석사과정.28) 씨가 실질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지난 83년 생물학과에 입학한 서씨. 어린 시절을 난지도 샛강에서 보낸 그는 당시 그물에 잡힌 물총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20년이 지난 지금 철새들의 생태를 한장의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새에 미쳐 전공을 바꾼 케이스. 현재 동서조류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자칭 '새와 결혼한 사람' 으로 통한다.

박씨는 "철새가 오고 안오고는 '도래지의 오염' 보다 '주거환경의 파괴여부' 에 달려있다" 며 "새를 보호하기 위해 환경오염방지도 중요하지만 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 주장한다.

몇년전만 해도 낙동강하구 을숙도의 갈대밭은 아시아 최대의 겨울철새 도래지였다.

강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하얀 고니나 떼지어 창공을 나는 기러기와 오리의 모습은 이제 슬픈 전설이 되고 말았다.

갈대밭을 없앴기 때문이다.

금강하구는 한남대 야조회가 매년 12월 탐사를 하는 곳. 올해로 11회째다.

매년 사진전시회와 함께 보고서를 만들어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그만큼 금강하구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90년대 들어와 하구언댐 건설로 많은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잃어 이제는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고 서씨는 강조한다.

철새들이 강하구를 많이 찾는 이유는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기 때문. 강하구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만 서식하는 게. 새우. 망둥어. 조개류등 물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풍부하다.

또한 육지와 멀리 떨어져 새들이 편안히 쉴 수 있다.

강하구의 갈대밭은 철새들에게 좋은 안식처이자 은신처인 셈. 그러나 갯벌과 갈대밭의 훼손으로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야금야금 갉아 먹혀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에서는 해마다 많은 돈을 들여 환경보존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강처럼 수로를 정비하면 물은 맑아질지 모르지만 철새들의 보금자리는 자꾸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을 훼손시켜 가며 벌이는 환경보존사업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천수만 =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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