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첩사건]각계각층 포섭 대담한 손길(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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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파 부부간첩및 연계고첩망' 사건은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아직도 적지않은 숫자의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 는 정보기관의 경고가 상당부분 사실임을 입증한 셈이다.

철저한 우익인사로 분류되며 어느 정보기관도 그의 사상성향을 의심할 수 없었던 서울대 고영복 (高永復) 명예교수가 36년동안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점과 국가 주요기간시설인 지하철에까지 고정간첩이 침투해 유사시 파괴공작을 준비해 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안기부도 이 점을 감안, 발표문에서 "국가안보 중추기관으로서 장기잠복 간첩을 제때 색출하지 못한 점에 책임을 통감한다" 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안기부가 파악하고 있는 고정간첩의 숫자를 공개할 순 없으나 일반인들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며 친북성향 인사만도 4만명 정도" 라고 말했다.

고정간첩들은 보수 우익세력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게 안기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구속된 고정간첩 심정웅의 직장 동료들은 한결같이 "평소 노조활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와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며 의아해 했다.

高교수가 검거되기 직전 누군가로부터 "지금 위급상황이니 급히 베이징 (北京) 으로 출국해 북한대사관으로 들어가라" 는 메모지를 받은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안기부 수사관들이 찾아낸 사실만 보더라도 이는 아직 검거되지 않은 고정간첩과 꾸준히 연락을 취해왔을 것이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은 3개월 가량의 활동기간이 지나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단기간첩' 으로 고정간첩망을 점검하고 친북성향의 인물을 새로이 포섭하는 임무를 띠고 남파됐다.

이들이 소속된 북한의 사회문화부는 국내의 각종 간행물을 분석해 1천5백명의 포섭대상자를 선별, 개인별 신원파일을 만들어 관리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부부간첩은 남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30세이하의 공작원으로 "남한내 진보세력은 무조건 자기네 편" 이라는 인식을 갖고 첫 만남부터 대남 공작원임을 당당하게 드러낼 만큼 대담성을 보였다는게 수사관계자의 설명이다.

수사 결과 해안경비의 취약함이 지난해 동해 잠수함 침투 사건에 이어 또한번 드러났다.

부부간첩이 지난 8월2일 공작선을 타고 북한 남포항을 출발, 공해를 거쳐 반잠수정으로 갈아탄 뒤 거제도 해안으로 '무사히' 침투하는 동안 해안선 경비망이 어이없이 뚫린 것이다.

강연정이 검거 하루 뒤 독약앰풀로 자살하는 것을 막지 못해 당초 역 (逆) 공작을 통해 이들의 귀환선을 붙잡으려던 수사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 점은 이번 수사의 티로 지적되고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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