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한국경제]9.경제엔 레임덕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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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 " 지난 3월5일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취임연설에서 힘주어 한 말이다.

정치적 레임덕 현상이 경제에 파급되는 현상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이었다.

취임초에는 야당까지도 姜부총리의 리더십과 뱃심에 지지를 보냈었다.

그러나 경제팀은 몇개월 못가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경제정책의 무정부 상태" 라는 비난속에 도중하차해야 했다.

연초의 한보사태 이후 연쇄부도와 경제악화는 예상됐던 코스였다.

그렇기에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시 됐었다.

그러나 대선 회오리 속에서 기아사태가 정치문제화하자 우려했던 레임덕 증상이 여지없이 기승을 발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대통령은 행여 흙탕물이 튈세라 말한마디 없이 뒷짐을 졌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정부를 코너로 몰았다.

종래의 정부.여당 팀플레이도 자취를 감췄다.

여당은 '제 코가 석자' 였고, 한보특혜 시비에 혼이 난 정부 당국자들은 납작 엎드린채 '책임질 일은 일체 사절'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갔다.

정부나 정치권의 오판은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갔다.

기아사태로 3개월을 허비하더니 국회의 금융개혁법 시비마저 혼돈을 거듭, 금융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박승 (朴昇) 중앙대 교수는 "정부가 좀더 일찍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된 금융기관 부실채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했어야 했다" 면서 "개각을 계기로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고 말했다.

시장원리 여부를 떠나 위기관리는 정부 본연의 업무임을 그는 강조한 것이다.

경제관료들도 할 말은 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들은 이제 대놓고 대통령을 원망한다.

정치적 압력은 대통령만이 막아줄 수 있는데 대통령 자신이 경제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기아문제만 해도 대통령과 정치권이 명백히 반대하는 정책을 어떻게 직업관료들이 밀어붙이나. 미국에서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파업해도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는데 우리 대통령은 뭘했나" 라고 항변한다.

이젠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 신청까지 불가피해진 마당에 정부주도 이외에는 달리 카드가 없다.

과거의 책임문제를 시비할 여유가 없다.

일단 '한국주식회사' 의 국제부도를 막는 일이 발등의 불이고,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대외신용 회복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조윤제 (趙潤濟) 서강대교수는 이 시점에서 "손실의 배분이 가장 중요하다" 고 강조한다.

20조원의 부실채권을 그대로 두면 어차피 경제가 파탄되고 결과적으로 국가전체에 파국이 닥치는 만큼 국민의 '고통분담' 을 통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채발행을 통해 부실채권을 털어주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방안이다.

요컨대 고통의 분담을 국민에게 요구해야 하는 '쓴 약 처방' 이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지금의 레임덕 속에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된 정부의 소신정책만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

비단 현 정권만의 일이 아니라 1백일 후에 탄생될 새 정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과제다.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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