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북한의 억류 조사에 속수무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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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근로자가 북한 당국에 억류돼 조사를 받은 지 1일로 사흘째를 맞는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존엄 높은 공화국(북한)의 정치체제를 비난하고 여성 종업원을 변질·타락시켜 탈북을 책동했다”며 “관련 규정에 따라 조사 중”이라는 통지문을 일방적으로 보낸 뒤 연락이 없다. 정부도 해당 근로자가 개성공단 내의 모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 외에 자세한 상황과 사건 진상에 대해선 진전된 사안이 없다고 답답해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31일 “피조사자와 우리 측 관계자와의 면담은 아직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며 “북한에 접견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통지문을 오후에 발송했고, 북측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날까지 남북 합의에 따른 피수사자의 접견과 조속한 사태 해결을 구두로만 촉구했으나 한 단계 수위를 높인 셈이다.

남북은 2004년 합의를 통해 우리 국민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에서 법질서를 위반했을 경우 북한 당국이 ▶그 행위를 중단시킨 후 조사하고 ▶위반 내용을 남측에 통보하며 ▶사안에 따라 경고·범칙금 납부·추방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이 조사 중이란 통지문을 보낸 것도 이 같은 합의에 따른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합의 내용에 따르면 추방할 수는 있어도 남측 인원을 북한 법정에 세울 순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북측의 일방적인 조치에 의해 우리 국민이 (북측의) 사법적 판단을 받는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남북은 1971년 8월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접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591회 회담을 통해 136건의 합의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북한이 남북 간에 맺은 합의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일방적으로 ‘엄중행위’로 규정해 조사나 임의의 조치를 취할 경우 합의서 이행을 촉구하는 것 외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북한은 “피조사자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정치 체제 비난’에 해당한다고 통보해 엄중행위로 간주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엄중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남북이 별도의 쌍방 합의를 통해 처리토록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국 간 대화 채널이 끊긴 것도 사건 해결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과 국가안전보위부, 출입국사업부 등 이 사건에 관여하는 기관이 여럿인 데다 남북 관계가 냉각되다 보니 북한 당국이 위반행위에 대한 잣대를 더 엄격히 적용할 가능성이 커 사태 해결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점점 늘고 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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