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강소기업 ① 차량 오일 주입기 국산화 ‘예은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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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예은테크의 박경남 사장(左)과 남편 오기선 이사가 파이팅을 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설비업체 예은테크는 아내는 최고경영자(CEO)로, 남편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부부가 금실 좋게 운영하는 회사다.

이 회사 박경남 사장의 남편인 오기선 이사는 “내가 경영을 했던 10년간은 매출액이 20억원을 넘기지 못했는데 아내가 경영을 맡은 뒤로는 매출이 10배 넘게 늘었다”고 말했다.

◆틈새 제품으로 해외 공략=이 회사는 자동차의 오일 주입기를 국산화한 업체다. 진공 상태에서 11가지 오일과 가스를 차에 넣는 기기다. 오일 주입기 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신차가 나올 때마다 개조 수요가 있기 때문에 기술이 있는 중소기업이 하기에 적합한 틈새시장이다. 이 회사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60%대다.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모든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고 수출도 한다.

2002년 8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90억원으로 뛰었다. 매출이 급증한 것은 수출시장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타이어를 자동으로 장착시키는 기계와 시트 자동화 시스템 등도 개발했기 때문이다. 올해 매출액은 1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체코의 노소비체에 설비공장을 건설하고 직원 6명을 상주시키고 있다. 또 미 앨라배마주에도 공장을 세웠다. 미국·유럽 시장을 본격 공략하기 위해서다. 박 사장은 “유럽이나 미국산 오일 주입기는 제품이 규격화돼 있지만 예은테크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주문형 맞춤 생산을 할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는 최근 외국 바이어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이탈리아 피아트의 에이전트, 미 포드·크라이슬러 관계자가 회사를 다녀갔다.

◆아내, 남편으로부터 경영권 이어받아=이 회사의 CEO는 원래 현재 기술경영을 맡고 있는 박 사장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대우차에 근무하면서 익힌 기술로 1992년 회사를 차렸다. 오일 주입기를 개발해 모두 대우차에 납품했다. 제품 가격은 수입품의 절반에 불과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회사는 이 기기를 전량 수입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대우차가 워크아웃되면서 예은테크의 매출도 크게 떨어졌다. 다른 어려움도 밀려왔다. 남편과 동업을 하던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개발에만 몰두하던 남편은 갑자기 회사를 혼자 떠안게 되자 당황했다. 아내에게 우선 경리 일이라도 봐줄 것을 부탁했다. 사실상 경영을 맡긴 것이다.

종업원 13명에 매출도 거의 없는 빈 껍데기뿐인 회사였다. 대학 졸업 뒤 간호사로 일하다 전업주부로 있던 박 사장은 경리학원부터 다녔다.

박 사장은 “젊은 시절 환자를 돌보던 심정으로 회사를 일으켜 종업원들을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회사를 맡고 나서 사업이 잘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오일 주입기를 전량 수입해 쓰던 현대자동차가 예은테크에 눈을 돌렸다. 이때부터 매출이 다시 급증했다.

박 사장은 남편을 대리하는 형식적인 ‘얼굴 마담’이 아니다. 직원 채용 권한이 있고 결재도 도맡아 한다. 해외 출장도 직접 다닌다. 박 사장은 “한번은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백만원짜리 부품을 다시 구입해서 물건을 만든 일이 있었다”며 “기술을 책임진 남편에게 사무실이 떠나갈 듯이 호통을 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대주주인 남편에게 “경영 방침이 맘에 들지 않으면 나를 해고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경영권을 돌려줄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박 사장은 “언제든지 주부로 돌아갈 생각이 있지만 남편이 경영을 계속 맡기를 원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자동차 공장을 일괄입찰 방식으로 수주하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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