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형사처벌 대상 직장인들 "집행유예대신 벌금형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음주측정 거부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던 모 대기업 金모 부장 (42) 은 최근 항소심에서 벌금 3백만원을 선고받아 회사눈치를 덜 보게됐다.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데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으니 만족할 만했는데도 金씨는 항소했다.

金씨는 "불황을 이유로 회사는 기회만 있으면 인원을 줄이려 한다.

고민많은 40대 간부로 한창 돈이 들어갈 나이에 흠집이 생기면 1순위 명예퇴직 대상이 된다.

또 회사 규정상 금고이상의 형을 받으면 임원 승진에도 지장이 있으니 제발 집행유예보다 한단계 낮은 벌금형을 선고해 달라" 는 내용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낸 것이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감원하는 기업체가 늘면서 직장인들은 인사기록등에 흠집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집행유예보다 뭉칫돈이 들더라도 벌금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 백화점 직원 朴모 (35) 씨는 지난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어린이를 치어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구속돼 지난 6월 1심에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朴씨도 항소이유서에서 "예전처럼 정이 흐르는 노사관계가 아니다.

10년간 일해온 직장을 잃지 않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 고 호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벌금 3백만원을 선고했다.

또 서울지법 형사항소4부는 최근 주식 시세조종 혐의로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모증권사 고문 張모 (51) 씨에 대한 검찰 항소를 기각했다.

張씨는 벌금 1천만원에 약식 기소됐으나 벌금형 이상을 받으면 임원 자격을 박탈하는 인사규정을 의식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던 것. 재판부는 "피고인이 벌금형 이상을 받을 경우 증권사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는 점을 감안했다" 고 항소기각 이유를 밝혔다.

서울지법 항소부의 한 판사는 "직장인들의 경우 종전엔 목돈이 들어가는 벌금형보다 1~2년만 무사히 넘기면 되는 집행유예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최근엔 감원.해고 위험을 내세워 벌금형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법관들도 뉘우침이 뚜렷한 경우 가급적 이들의 뜻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정철근.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