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해도 군사적 대응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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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예고한 로켓 발사 날짜(4월 4~8일)가 다가오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주변국들의 만류 속에서도 북한은 연일 ‘우주 이용권’을 들먹이며 발사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한국과 미국·일본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안보리 제재 논의 자체만으로도 6자회담은 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6자회담 공전이 장기화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북한 미사일 문제를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요격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선 미국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겉으론 발사 자제를 요구하면서도 주권국가로서 ‘할 수 있는 일’로 여기는 눈치다. 대북 제재를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은 한반도의 대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T) 인터뷰에서 미사일 문제 외에 개성공단과 북한 급변사태 등 ‘한반도 3대 이슈’에 대한 대응 방침을 상세히 밝혔다.

“일본이 격추 나서는 것엔 반대할 수 없어”

◆북한 미사일=사실상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북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는 군사적 대응에 반대하면서 “이번 (미사일) 발사가 짧게는 협상에 도움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북한이 알게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또 미사일 요격 불사를 선언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격추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국민 안전을 위한 것으로 반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일본도 이런 부분(요격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신중하게 대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초 이번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한국은 강경 대응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국제사회에 많았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밝힌 한국 정부의 대응 기조는 이처럼 온건 대응에 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사일 발사와 결부시켜 북한에 강경 일변도로만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향후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사일 발사 때문에 정부의 최종 목표인 비핵화 대화 채널을 먼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이 같은 발언은 군사적 대응이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군사 도발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측면도 감안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그동안 미묘하게 차이를 보여 온 한·미의 대북 대응도 북한의 발사에 앞서 ‘조율’하는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군사적 대응이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강경론을 택해 미국 정부와 의견차만 키우는 듯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북한과 대화 창구 위해 개성공단은 유지”

◆개성공단=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유지 원칙도 밝혔다. 그는 “북한 미사일 발사 시 개성공단을 폐쇄하느냐”는 질문에 “폐쇄와 같은 극단적 조치는 하지 않으려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열어놓기 위해 개성공단은 유지해 나가려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와 관련, 한 당국자는 “개성공단을 놓고 우리가 먼저 끊겠다고 하는 것은 실리로 보나 전략으로 보나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7000억원의 정부 투자금이 들어간 공단은 이제 입주 기업들이 결실을 맛볼 때다. 또 개성공단에서 3만8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매일 진행되는 ‘자본주의 학습 효과’도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혁·개방이라는 목표와 연결돼 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이를 감안한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30일 발생한 북한의 개성공단 한국 측 직원 억류 사태가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 붕괴 때 중국 점령은 상상할 수 없다”

◆북한 붕괴=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졌던 ‘햇볕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밝혔다. “남북 간 화해 기조를 유지하는 데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10년간 북한을 많이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결과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은 피했다. 그는 “현 정부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로 북한을 대하는 것일 뿐 과거보다 경직된 정책을 펴려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는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북한 체제 붕괴 시와 관련된 집요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대규모 주민 탈북사태 ▶중국의 북한 차지 가능성 등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 대통령은 “최후의 목표는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어떤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중국에 의해 점령된다든가 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면서 “여러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항상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유고 시에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 같은 국가들과 밀접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유사시 시나리오와 관련해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묻는 질문이 다시 이어졌지만 그는 “가정할 수는 있지만 당장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만 했다. FT는 다시 한 번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남북 간 통일이 해법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대통령은 “이 시점에 북한이 붕괴된 상황을 가정해 언급하는 것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안 맞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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