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직접 쓴 ‘김연아의 Only Hope’ ⑧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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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갈라쇼에서 명품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LA=연합뉴스]

여자 피겨스케이팅 세계챔피언에 오른 김연아(19·고려대)가 30일 오후(한국시간) 본지에 원고를 보내 왔다. 2009 세계피겨선수권을 앞두고 지난 16일부터 연재해 온 ‘김연아의 Only Hope’ 마지막 8회분이다. 16일은 중앙일보가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꾼 첫날. 이후 김연아는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 구동회 부사장을 통해 자신의 근황과 심경을 전했고, 당초 약속대로 마지막회 원고를 직접 써보냈다. 원고에서 김연아는 “이번엔 꼭 우승을 해야겠다는 약속을 자신과 했고, 마침내 그 약속을 이뤘다”며 “시상대에서는 월드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기까지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라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 최종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아낌없이 땀을 흘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김연아 편지 전문. 

지난 두 번의 세계피겨선수권대회를 떠올릴 때마다 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매번 부상으로 우승의 꿈을 놓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올림픽 시즌 이전의 마지막 세계선수권대회였기에 대회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어느 때보다 달랐다. 이번엔 꼭 우승을 해야겠다는 약속을 나 자신과 했고, 마침내 그 목표를 이뤘다. 만일 이번에도 금메달을 놓쳤다면 나 스스로에게 실망이 무척 컸을 것이 다.

로스앤젤레스에 와 공식 훈련을 하면서 점프나 스핀 등의 동작이 그 어느 대회 때보다 완벽해 실전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마치 연습하듯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계속되는 훈련에서 실수가 크게 줄면서 강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첫날 쇼트 프로그램을 실수없이 끝낸 뒤 좋은 점수를 기대했다. 하지만 키스앤크라이 지역에서 점수를 기다리며 ‘아마 4대륙선수권대회(2월)와 점수가 비슷할 거야’라고 예상을 했는데 실제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와 나 자신도 놀랐다.

프리스케이팅은 막바지 트리플 살코 점프에서 실수가 있었다. 이전 5개 점프를 모두 성공시키고 살코 점프를 시도하려는 순간 자세가 안정적이지 못해 점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점프를 하려는 순간 자세가 불안하다고 여겼지만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점프가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았다. “아, 내가 실수했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전 점프를 다 성공했기 때문에 대회 우승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뒤 프리스케이팅을 하기에 앞서 ‘연습때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 한 켠에는 ‘혹시 큰 실수를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 음악이 다 끝났을 때 ‘무사히 연기를 마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기뻤다. 관중의 기립박수와 환호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제 다 끝이다’는 것이었다.

전광판에 점수가 게시되기 전 나는 프리스케이팅 점수 역시 예상을 할 수 없었다. 점수판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게시된 점수를 보고도 ‘점수가 높다’ 아니면 ‘낮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내가 1등이구나, 그토록 바라던 200점을 마침내 넘었구나”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금메달이 확정되고 우승 시상 포디엄에 오를 때만 해도 덤덤했다. 하지만 막상 1등 자리에 서고 경기장을 둘러보았을 때는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으려고 애썼지만 눈물은 계속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상대에 올랐을 때 대뜸 ‘이 자리가 내가 그토록 서고 싶었던 자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월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기까지 그동안 힘들었던 많은 시간이 떠올랐다. 솔직히 대회 때마다 시상식에서 태극기와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면 가슴 뭉클했는데 이번에는 세계챔피언이 됐다는 감격과 지난날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번 시즌, 특히 국제대회 때마다 많은 분들이 경기장에 직접 오셔서 응원을 해주시는 등 어딜 가든 팬들이 응원을 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됐다. 팬 여러분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세계선수권 우승을 했지만 정작 중요한 대회는 내년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이다.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밴쿠버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이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11개월 동안 최종 목표인 올림픽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아낌없이 땀을 흘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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