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문창극 칼럼

미사일을 이기는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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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북한 핵을 막기 위해 6자회담을 하고, 미사일을 못 만들게 무슨 프로세스니 이름도 어려운 회담을 하더니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사실 6자회담처럼 위선적인 회담이 있을까. 북한은 이미 사생아를 낳아 뒷방에서 기르고 있는데 임신을 못 하게 하는 방도가 무엇이냐, 임신은 했더라도 애는 못 낳게 해야 한다고 회담을 하니….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탄두는 태평양으로 날아가고 있는데 ‘쏘면 대화로 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고작 내놓는 해법이다.

일이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도 나와 같이 이성적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대화를 한다.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한 것은 알카에다가 그런 반이성적인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이나 6자회담도 북한의 이성을 믿고 출발한 것이다. ‘자기 백성 수백만을 굶겨 죽이면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드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것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다. 주영 북한대사의 “못 살면 우주개발도 못 하나”라는 말은 스스로 반이성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평화조약을 맺고 돌아오자 영국 국민은 환영했다. 히틀러도 자기들처럼 이성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조약은 휴지에 불과했다. 협상은 양쪽이 똑같이 이성에 기반을 둘 때 가능하다. 햇볕정책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단 상대방이 우리와 같이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그렇다면 반이성적인 집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공산주의 동구를 무너뜨린 계기는 로마 교황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이었다. 바오로 교황은 야외미사를 베풀면서 그들에게 개인의 존엄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를 용기 있게 설파했다. ‘여러분은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계급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당신은 존엄한 대접을 받아야 할 고귀한 존재’라고 일깨웠다. 미 여류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은 바오로 전기에서 “미사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폴란드인들은 이미 그전의 그들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소련은 미사일이 없어, 핵이 없어 붕괴된 게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하나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공산주의 같은 시스템을 바로잡는 일은 종교밖에 할 수 없다고 믿었다. 정상회담에서 그가 역설한 것은 종교의 자유, 인권이었다.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그는 숙소로 반정부 인사들을 초대해 격려하는 용기를 보였다. 비공개회의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신의 존재를 역설하며 설득해 참모들을 놀라게 했다(월스트리트 저널 3월 7, 8일자).

나는 북한과 회담을 잘해서 통일이 오리라 보지 않는다. 통일보다 먼저 절실한 것은 무기력한 북한 주민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우리가 인도적으로 북한을 도와주더라도 그 속에 그들의 자존을 일깨워 줄 씨앗을 뿌려야 한다. 당신들은 굶주리고 억압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인류의 이성이 요구하는 것은 자유·인권 그리고 행복이다. 그렇다면 이성을 신봉하는 진보주의자들이야말로 북한에 이 점을 가장 역설해야 하는데도 남쪽 진보는 북한에 대해서만은 벙어리들이다.

전쟁 위험이 있으니 북한의 진실에 눈을 감고 대화해야 한다는 거짓 속삭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쪽도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좀 더 담대하게 북한에 인권과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의 약점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도발을 못 하도록 방어 준비만 철저히 하면 된다. 국방비를 늘려 미사일 방어망도 만들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각오를 촉구하고 있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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