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왜 가파르게 상승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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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환율은 더 오른다' 는 예상이 아예 고정관념으로 변해가고 있는듯하다.

외국인투자자금 이탈, 달러화 가수요등 그동안 환율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 변수가 상당폭 제거됐는데도 환율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외환당국은 가수요를 누르면 환율이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제는 실수요가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주 중반이후의 환율상승은 금융기관들이 외채를 갚기 위해 달러화를 집중적으로 사들인데 따른 것이다.

외화차입이 끊긴 종금사들은 하루하루 콜자금 끌어쓰듯 달러화를 사들이고 있다.

게다가 산업.수출입은행등 달러화를 주로 풀어온 기관들도 이번에는 외채결제를 위해 달러화를 사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시중은행들도 외화자금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해외차입이 어려운데다 한국은행이 시장개입을 위한 '실탄' 확보를 위해 외화예탁금을 조금씩 거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외화예탁금이 줄어든 공백을 종금사에 대한 대출회수로 메우고 종금사들은 또 이를 커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달러화를 구하러 나서고 있다.

가뜩이나 거래량이 줄어든 외환시장에서 종금사들이 조금만 주문을 내도 환율은 성큼성큼 뛰게 된다.

이런 사이클이 환율상승을 더 부추기고 한은의 시장개입효과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은행의 한 딜러는 "외환당국의 방어선이 5원단위로 후퇴하고 있어 확고한 방어의지나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국내에 달러화가 모자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수급에 의한 환율상승이라면 대책은 두가지밖에 없다.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여야 한다.

일단 국제신인도가 떨어진 마당에 단기적인 외화공급대책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수요억제를 위해서는 현재 달러화의 최대 수요처인 종금사에 대한 근본대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부실 종금사 처리가 금융불안을 해결하는 관건이라면 기아사태 때처럼 질질 끌지말고 빨리 해결하자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인형 (李寅炯) 금융연구실장은 "부실 종금사에 대한 처리대책을 명확히 마련해 장기 청사진을 제시하면 시장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종금사들이 연말까지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얼마인가를 파악해 한은이 직접 대출해주자는 의견도 있다.

채권 (債權) 형태로 외화자산을 잡으면 외환보유고도 덜 줄이고 지원효과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한은은 10일 달러당 1천원선이 뚫리는 것은 막았다.

그러나 은행에 외화예금을 들어둔 기업들은 한결같이 달러당 1천원은 돼야 풀겠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환율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달러당 1천원 이상으로 올라간뒤 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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