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아의 어머니'고 다우치여사 기념비 일본서 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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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윤학자, 아니 다우치 치즈코 (田內千鶴子) 를 말하자. 일본인이면서 일제시대에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전쟁 때 실종된 남편의 뒤를 이어 목포 공생원의 고아들을 돌보는데 생애를 바친 '한국 고아의 어머니' . 과연 국적이 무슨 소용 있을까. 절반의 한국인으로 고난의 삶을 살다 간 그는 지금도 살아있는 듯하다.

한국 - 일본의 화해와 교류의 연결고리 같은 것으로…. 지난 68년 3만여 조객이 자리했던 목포의 장례식. 그리고 만 29년이 지난 지난달 31일, 그의 고향인 일본 고치 (高知)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마침 그날이 윤여사의 생일이자 기일인 것은 무슨 조화였는지. 목포산 (産) 화강암 비석 주위엔 3천개의 작은 돌이 놓여졌다.

그가 키운 고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까닭 모를 이 가슴앓이는 뭔가.

윤여사의 생애와 아들 윤기씨의 고뇌를 담은 김수용감독 영화 '사랑의 묵시록' 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일 게다.

일본에선 95년부터 지방을 돌며 이 영화를 상영했다.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고 기념회를 만들었던 건 그 다음. 이번엔 비로소 비석을 세우게 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제작사가 일본회사라 현행법상 상영불가 - .할말이 없다.

아들 윤기 (55.공생복지재단 회장) 씨의 말. "남들은 어머니를 위대하다고 하지만 저에겐 조용하고 평범한 분이었습니다.

만일 조금이나마 위대한 흔적이 있다면 목포시민, 한국국민의 덕택일 겁니다."

수구초심 (首丘初心) 이었을까. 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윤여사의 유언은 "우메보시 (梅千し.매실장아찌)가 먹고 싶다" 였다.

그러나 고향땅에 세워진 비석은 다시 목포를 향하고 있다.

진정 그의 고향은 어디인가.

여하튼 윤학자, 아니 다우치 치즈코는 모두의 가슴에 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치 =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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