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의 북송사업 보도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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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일본의 공기,가슴 가득히 (요미우리)' '누나의 눈에 눈물,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 (아사히)' '공백의 세월을 메우는 여행 (마이니치)' 약 40년만에 고향땅을 밟은 일본인처들의 귀국소식을 전하는 일본 언론들의 9일자 보도에는 '단절의 역사' 에 대한 안타까움이 곳곳에 배여있다.

시계를 북송사업 당시로 되돌려 보면 엄청난 변화가 느껴진다.

북송자 9백75명이 북송선을 타고 처음 니가타 (新潟) 항을 떠나던 59년12월14일.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이를 '희망에 찬 사업' 으로 극찬했었다.

그날자 요미우리 (讀賣) 신문은 '귀환하는 첫 배, 희망의 출선 (出船)' 이라고 보도했으며 마이니치 (每日) 신문은 '희망을 싣고 청진으로' 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사히 (朝日) 신문은 출발전날의 광경을 보도하며 "일본과 북한의 가교가 되고 싶다" 는 북송교포들의 소감을 소개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북한과 일본을 잇고 싶다던 사람들이 오히려 발이 묶인 꼴이 돼버렸다.

북송 직후에는 각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북송사업을 미화하는 평양발 르포기사를 내보냈다.

59년 12월20일자 마이니치 신문 석간은 북송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평양의 분위기를 전하며 "주택도 학교도 안심" 이라는 북한 당국자의 발언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았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의 '천리마운동' 을 소개하며 "북한의 경제건설 템포는 놀랍다" 고 했으며 요미우리신문도 북한의 실상에 대해 "마을마다 문화주택이 계속 늘어나고있다 (59년12월26일자 석간)" 고 소개했다.

북송사업으로부터 38년이 지난 지금. 3년만 지나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던 북한의 약속은 이제서야 그것도 일본인처 15명에 대해서만 지켜졌다.

그토록 떠들썩하게 선전됐던 '경제건설의 현장' 도 식량난에 허덕이는 '배고픔의 현장' 으로 변했다는게 낱낱히 드러났다.

이처럼 북송사업의 모순이 드러날 동안 당시의 보도에 대해 해명한 일본의 언론은 찾아볼 수 없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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