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패러다임]2.선택해서 집중하자…'독특한 구상' 없으면 못버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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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기업경영 혁신을 계속 추진해온 미국의 컴퓨터 업체 휴렛 패커드사는 공식적인 기업목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연구개발 능력과 제조 능력및 마케팅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우리의 진출이 사회에 필요하고 수익적 공헌을 할수 있다고 판단될때에만 새로운 영역에 진출한다."

이는 기술, 생산력, 마켓팅등 필요한 핵심역량을 갖추지않고서는 새로운 사업에 함부로 뛰어들지않겠다는 것이다.

또 새 사업 진출에 앞서 사업 자체의 기술적 적합성 외에도 사회에 대한 기여도까지 고려하고있다.

과거 '돈 되는' 사업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었던 상당수 우리 대기업들의 확장과는 사뭇 다르다.

뒤늦긴 했지만 국내 기업들도 이제 '핵심역량에의 집중' (Core Concentration) 이라는 명제를 놓고 씨름하고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핵심역량이 없는 분야는 과감히 버려야한다.

수익성이 당장 눈앞에 보이더라도 핵심역량을 갖출수 있는 곳에만 진출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2000년대 무차별.전방위적인 선진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거기에는 기아.진로.대농.한보등 부실그룹의 사례도 반면교사 (反面敎師) 의 역할을 했다.

이들의 경우 그룹이 존망 (存亡) 의 위기에 처하고난 뒤에야 핵심집중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있다.

만일 기아가 기아특수강등에 대해 과잉투자를 하지않았다면, 진로가 건설.유통등으로 무리하게 다각화하지 않았다면, 대농이 일찌감치 섬유업종을 과감히 버리고 백화점에만 전념했다면 어떠했을까. 핵심집중이란 각 기업이 독특한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삼아 국제경쟁력을 키워나간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문제는 개개 기업들이 무엇을 자신의 핵심역량을 삼는가하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용화수석연구원은 "많은 사업을 벌여놓은 국내 기업들이 미래 핵심역량을 선정하기가 쉽지않을것" 이라면서 "그러나 가장 경쟁력있는 부분에 힘을 모은다는 차원에서 각 기업들이 핵심역량을 나름대로 정의해야할것" 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의 경우 가장 중요한 핵심역량은 기술력이다.

한 기업이 핵심사업으로 선정한 분야에서 핵심기술까지 보유하고있으면 그 기술의 조합과 응용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고 기존시장도 선도해 나갈수있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 원장은 "정보화.지식화 시대에는 기존의 생산요소보다 정보와 지식이 중요한 부가가치의 원천이 될것" 이라며 "쉽게 모방할수없는 지식자산을 핵심역량으로 확보함으로서 경쟁자를 따돌리는 경영전략이 요구된다" 고 말했다.

핵심집중에서 또 하나 문제는 과거 경영패러다임 아래 여기저기 벌여놓은 수많은 경쟁력없는 사업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김인수 (경영학) 고려대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벌여놓은 사업들에 대한 지나친 향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인간관계, 만만치않은 노조의 반발등 어려운 여건이 도사리고있다" 고 지적했다.

金교수는 "체격이 크지 않아도 체질이 강한 기업은 어떤 환경서도 살아서 성장할수 있다" 며 "경쟁력없는 사업은 조속한 시일내 과감히 정리한뒤 그 자원을 경쟁력있는 부분에 투자해 핵심역량을 더 심화시켜야한다" 고 주장했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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