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급등…가계까지 주름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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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연일 휘청거리면서 한국경제 전체가 불안에 휩싸여들고 있다.

이러다가 경제전체가 어찌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의 손해는 두말할 것 없고, 환율이 이처럼 오르면 당장 일반가계에 주름살을 주는 것은 물가불안이다.

우선 환율급등으로 수입물가가 오르고 이것이 국내물가 상승에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한국은행이 단순히 컴퓨터만 돌려본 결과 달러환율이 10% 오르면 물가는 그해에 0.6%, 다음해에는 2.1% 추가로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도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라는 전제하에서다.

그러나 최근 1백%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등 일부 기초원자재의 국제가격이 오름세를 타고 있어 환율급등에 따른 가격상승효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제조원가가 높아져 제품판매가를 올려야 할 판이다.

또 환차손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가격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안고 있는 환차손은 어림잡아 4조5백억원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고스란히 물가상승으로 얹혀질 경우 가계의 주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부터 뭉텅뭉텅 돈을 푼 것도 큰 부담이다.

환율이 오르면 오히려 통화를 죄어 방어태세를 취해야 할텐데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돈을 풀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기아사태로 자금사정이 악화된 종금사들이 부도로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금융시스템 붕괴라는 '급한 불' 을 끄는 상황에서 옷 젖는 것을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둘째는 돈줄을 죄면 기업들의 연쇄부도가 또다시 일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또 쓰러지면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이 계속되고 해외신인도는 더 떨어지므로 돈을 풀어서라도 막아야 할 상황이라는 것. 여기에다 정부가 환율을 잡기 위해 채권시장을 일찍 터준 것도 걱정이다.

금리차를 노린 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통화 터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돈을 푼다고 물가가 금방 뛰는 것은 아니다.

경험상 대략 1년정도 지나야 물가상승 효과가 나타난다.

또 돈이 금융기관에서만 맴돌뿐 잘 돌지 않고 있어 물가를 자극하는 타이밍은 좀더 늦춰질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요즘은 경기침체로 민간소비가 위축돼있어 돈을 풀어도 물가를 부추기는 효과는 적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호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면 외식 (外食) 도 줄이고 해외여행도 취소하게 되므로 자연히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통화량이 다소 늘어나도 수요측면에서의 가격상승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한은당국의 설명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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