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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전쟁' 피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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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선일씨의 참혹한 피살 사건 이후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찬반논란의 가열로 국론이 어지러워지고 있다. 일부 여야 의원이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를 위한 결의안을 제출하는가 하면, 시민.사회 단체들은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고 피랍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추가파병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파병 철회는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며 이는 앞으로 더 큰 테러를 부를 것"이라는 파병찬성론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는 전략적이고 국익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상상치도 못했던 9.11사태 이후 세계 질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새롭게 변해가고 있다. '적과 동지'에 대한 개념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해 서방 자유진영의 대열에 합류하든가, 이를 외면하여 세계로부터 고립되든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냉전시대 이념을 바탕으로 한 흑백논리보다 그 개념이 더 단순하고 선명하다.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이 전자를 택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9.11사태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더 이상 미국만의 전쟁이 아니고,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나라와의 전쟁이다. 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 이라크의 평화정착과 재건이다. 여기에 이미 35개국의 다국적군이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걸프협력위원회(GCC) 6개국의 파병도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이라크 추가파병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맹의 의무를 다하는 것만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라크의 평화정착 및 재건은 중동지역의 정치.안보.경제적 안정의 결정적인 요소며, 이는 우리의 경제 안정과도 직결된다. 현재 세계 12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중동지역 원유의존도는 국내 전체 소비량의 4분의 3이나 된다. 원활한 오일 공급을 위해서도 이 지역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9.11사태 이후 테러리즘의 위협은 또한 미국의 세계안보 전략의 개념에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국제 테러리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가볍고, 신속하고, 유연한' 최정예 부대를 중심으로 허브 스포크(Hub-Spoke) 개념의 군사독트린을 바탕으로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GPR)를 계획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이 재배치되고 한.미동맹 관계의 인식이 크게 변화했다. 이제는 일방적이 아닌 상호 지원이 미국의 새로운 상식이 되었다.

이라크 평화정착 및 재건의 성공 여부는 미국의 대북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큰 프리즘을 통해 반영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불량국가의 특징인 독재주의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으며, 또 테러리즘을 후원하는 국가 중의 하나로 미 국무부가 지명한 북한은 요주의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재건의 성공은 불량국가의 종말이 무엇이라는 교훈을 북한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테러리즘의 위협은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을 비롯하여 평화를 애호하는 전 세계 주민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테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예상하기 힘들다. 또 소수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저질러지는 테러의 피해 또한 엄청나다.

이와 관련, 가장 두려운 악몽은 테러집단이 WMD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발표하였고, 국제적으로 많은 국가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북관계를 인식해 우리는 이에 가입하지 않고 사안별로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나, 앞으로 테러리즘을 근절시키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국제 공조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승환 명지대 교수.미국 CSIS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