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은 백화점이 벙긋… 미국은 대형마트 방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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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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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마트인 월마트는 올해 직원 보너스로 20억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11% 늘렸다. 미국 전역이 극심한 소비 부진을 겪는데도 지난해 월마트 매출은 4012억 달러로 7.2% 증가했다. 대형마트 업계 전체도 지난해 4분기 매출이 2.6% 늘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대형마트의 선전이 경제 회복의 희망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미 양국에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똑같은 경기침체이지만 두 업계의 매출 증가율 곡선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미국에선 대형마트가 잘 나간다. 지난달 월마트의 동일 점포 매출은 5.1% 증가했다. 물건이 싼 데다 식료품처럼 불황에도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생활필수품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WSJ는 “식품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월마트 등 대형마트가 반사이익을 봤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외식비를 줄이면서 조리도구와 같은 주방기기도 잘 팔린다. 월마트는 값이 저렴하면서 품질도 괜찮아 반응이 좋은 자체상품(PL)의 비중을 높이고, 히스패닉 전용 매장을 내는 등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인 삭스와 메이시는 지난달 매출이 각각 8.5%, 26% 떨어졌다. 증권시장에서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백화점이 부진한 것은 물론 경기침체 탓이다. 금융위기와 고용 불안으로 소비자들이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물건이나 사치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표정관리를 하는 곳은 백화점이다. 올 1, 2월 대형마트 매출이 2.4% 줄 때, 백화점은 오히려 5.2% 증가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이 몰린 덕분이다. 특히 일본인들은 명품뿐 아니라 식품·가전제품까지 싹쓸이 쇼핑을 하고 있다.

환율은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바꿨다. 면세점과 가격 차이가 없게 되자 차라리 품목이 다양한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 해외명품팀 정지은 계장은 “과거 면세점 인기 품목이던 화장품·패션 소품 등의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볼 때 국내 여성들이 예전보다 백화점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런 추세가 지속되긴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원화 가치가 안정되면 외국인들의 국내 백화점 수요도 다시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보다 경기가 더 나빠지면 백화점을 찾던 국내 소비자들이 결국 대형마트로 발걸음을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투자증권 박인우 애널리스트는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실물경기 침체를 느끼는 정도에 시차가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 경제 상황에 따라 우리도 백화점보다 대형마트가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한국 백화점

■ 원화 가치 하락 이후 일본·중국·대만 등 외국인 관광객 몰려

■ 해외여행 줄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면세점 대신 백화점에서 쇼핑

*** 미국 대형마트

■ 경기침체로 사치품 수요 줄고,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소비 몰려

■ 값싸고 품질 괜찮은 자체 브랜드(PL) 상품 적극 출시 자료: 업계·우리투자증권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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