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어진 외환·주식시장-그 파장과 전망…환율·증시동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국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외풍에 강타당하고 있다.

기아사태를 가까스로 매듭짓는가 했으나 이번에는 국내에 진출했던 외국인투자자들이 손을 털고 한국을 떠나는 바람에 원화가치와 주가가 폭락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개방이 본격화된 이후 국경이 없어진 국내 금융시장의 혼미상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를 종합점검해 본다.

금주초 이후의 환율급등은 증시를 떠나는 외국인투자자금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외국인투자자들은 주식 판 돈을 상당부분 원화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즉시 달러화로 바꾸고 있다.

이것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가장 큰 달러화 매수세가 돼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주식보관대리업무를 많이 하고 있는 서울.외환.장기신용.신한.씨티.홍콩상하이.스탠더드차터드은행등에는 "주식매각대금을 달러화로 바꿔두라" 는 주문이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반대로 이같은 환율상승은 환차손을 기피하는 외국인 주식투매를 부르는 악순환고리를 형성하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외국인들은 매수세를 펴며 증시를 떠받쳤다.

이 덕분에 국내 기관투자가들과 개인투자자들의 매도세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그런대로 안정세를 유지했다.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외국인들이 매도세로 돌아선 반면 기관과 개인들은 매수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워낙 거세 주가는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고만 있다.

한마디로 외국인들이 국내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월말 현재 시가총액 (상장사 발행주식수×주) 대비 외국인들의 주식보유비중은 14%정도. 증시에 유통되고 있는 주식물량이 시가총액의 35%정도라고 볼 때 주가흐름을 얼마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규모다.

이런 위력을 가진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니 주가가 온전할 리가 없는 것이다.

서울은행 외국인증권관리팀 관계자는 "기아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던 9월말부터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았다 하면 즉시 달러로 환전하고 있다" 고 말했다.

현재 국내증시에 유입된 외국인투자자금 (약2백억달러) 중 25%정도가 단타용 (短打用) 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50억달러가 수시로 들락거리며 환율을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원화자금을 달러화로 바꾸려는 국내기업들의 수요도 늘고 있다.

수출대전을 받은 뒤 환전을 미루기도 한다.

너도나도 한꺼번에 '달러화 사자' 쪽으로 몰리고 있어 환율은 더 올라가고 있다.

한편 한국은행의 방어능력도 의심받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3백억달러를 겨우 지키고 있어 대대적인 개입이 힘든 상황이다.

21일에는 5억달러를 풀었지만 사자주문에 순식간에 먹혀버렸다.

경제여건이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으면 정책적으로 환율급등세에 브레이크를 걸기는 힘들다는 것이 외환딜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여기에 동남아 위기라는 해외요인이 가세, 외국인들의 증시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인 외국인들은 펀드를 구성할 때 위험분산 차원에서 여러 나라의 주식을 섞어 운용한다.

한국주식의 경우 대개 동남아 국가 또는 홍콩.일본등 아시아국가와 한묶음으로 분류되는데, 요즘 이들 국가의 증시가 흔들리면서 그 여파가 국내에까지 미치고 있다.

신흥증시에 적극 참여해왔던 모건스탠리의 경우 최근 동남아투자비중을 50%정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명수·남윤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