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새영화 '스타십 트루퍼스' 폴 버호벤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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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토탈 리콜' 을 감독한 폴 버호벤의 새 SF '스타십 트루퍼스' 에는 끔찍한 장면들이 넘친다.

또 미래의 지구는 군국주의에 물든 것으로 묘사된다.

그저 보아서는 어떤 메시지를 느낄 수도 없다.

단지 특수효과를 맡은 필 티펫이 만들어낸 장면들이 눈길을 끌 뿐. 티펫은 '스타워즈' '쥬라기공원' 등에서도 특수효과를 맡았었다.

먼 미래. 거대한 곤충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갑작스런 포격을 가한다.

8백만을 웃도는 사람들이 죽고 지구연합국의 군대는 외계인의 본거지 행성으로 쳐들어가 전쟁을 일으킨다.

서로 엄청난 숫자를 죽고 죽이는 싸움. 군국주의에 빠진 정부는 희생은 생각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영예로운 군대로 들어오라고 연방 선전을 해댄다.

버호벤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나. 9일 저녁7시 (현지시간) LA미국감독협회 시사실에서 한국.일본등 35개국 6백여명의 기자가 모여 시사회를 연 다음 날 오후 그는 LA의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 왜 군국주의가 흐르는 영화를 만들었나.

“로버트 하일라인의 동명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군국주의에 절대 반대다.

그러나 나는 현재 우리 사회가 조금씩 군국주의적 성향을 띄어간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영화를 통해 경종을 울리려했다.”

- 군국주의를 풍자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영화 중간중간에 '연합네트워크 (Federal Network)' 라는 국영방송이 갖가지 선전을 하지 않는가.

이는 30년대 독일의 전체주의 선전영화를 빗댄 것이다.

또 '연합네트워크' 가 죄수의 사형을 방송하는 장면은 범죄를 줄이겠다는 이유로 사형을 마구 집행하는 미국의 어느 주를 꼬집었다.”

- 하필 왜 그 소설을 택했나.

“젊은이들과 거대한 곤충 (외계인) 들간의 전쟁이란 게 흥미롭지 않은가.

사실 인간끼리의 싸움, 전쟁은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준다.”

- '원초적 본능' 의 샤론 스톤등 작품마다 강한 여성이 나오는데.

( '스타십 트루퍼스' 에는 디지라는 여전사가 나온다) .

“여성이 강하니까. 여자는 환경에 따라 남자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SF라 현실감이 적고 더구나 중간중간 코믹한 대사나 장면들이 섞여 만화같은 느낌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죽이는 것만 반복되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일단 만화처럼 시작해 관객을 몰입시키고 여전사 디지가 죽는, 영화의 중간부터 인간성이 배인 리얼리티를 살리려했다.

그 뒤로는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 내 의도다.”

- 사람들이 죽음이나 전쟁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지 않다.” (그는 여기서 기분이 상한 듯 굳은 표정이었다. )

- 수학과 물리학 박사학위가 SF영화에 어떻게 반영되나.

“그런 과학적 지식들을 벗어나서 영화를 만든다.

상상력이 중요하다.”

- '로보캅' 등 SF를 했다가 '원초적 본능' 같은 에로물을 만들고 다시 SF로 돌아온 이유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로보캅' 대본을 썼던 노이마이어가 4년전 '곤충을 닮은 거대한 외계 생명체와 지구 젊은이들이 싸우는 영화를 만들자' 고 해서 만들게 됐다.

'스타십 트루퍼스' 에는 어렸을 때 커다란 게가 나오는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를 본 기억을 되살렸다.

또 2차대전 당시의 처참한 광경들과 폭격의 기억도 영화에 집어넣었다.”

- 히틀러를 그린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던데.

“아니다.

얼마전 사적인 자리에서 33세 이전의 히틀러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한 적은 있으나 현재 계획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예수를 조망하는 영화다.” 버호벤은 '군국주의' 라는 말에 신경이 쓰이는 듯 '내 영화는 군국주의 영화가 아니라 곤충영화일 뿐' 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LA=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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