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 상영작] 대단한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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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같은 거창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지구 이쪽 저쪽에서 얼마나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의 무대인 캐나다 섬마을의 형편은 우리네 농어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업이 피폐해진 이래로 젊은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뭍으로 떠나고, 대부분 장년층인 주민들은 연금에 의지해 살아가는 형편이다.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플라스틱 제조공장을 유치하기로 했는데, 몇 가지 넘어야 할 난관이 있다. 공장 측의 요구 사항은 주민 수가 일정 규모 이상에다 상주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풍광도, 기반시설도 뒤떨어진 섬마을에 기꺼이 와줄 의사가 흔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잠깐 섬에 머물 젊은 의사가 도착하자 마을 주민들은 일치단결해 영화제목처럼 그를 '유혹'해 5년간의 장기계약을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의사가 광적인 크리켓 팬이라는 말에 크리켓의 '크'자도 모르는 주민들이 가짜 대회를 여는가 하면, 귀갓길에 푼돈을 흘려둬 줍게 하기, 낚싯대에 월척 끼워주기 등 온갖 '쇼'를 벌인다. 의사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이든 부인네들은 전화통화 내용을 도청하는 고난도 작업도 마다 않는다. 순박한 섬주민들이 총동원돼 벌이는 이런 쇼는 주민 수를 부풀려 공장 관계자를 속이려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대단한 유혹'은 경쾌한 코미디 영화지만, 그 바탕에는 그저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현실이 자리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연금을 나눠주는 것이 거의 유일한 일이었던 은행 지점장은 모처럼 주민들의 요구대로 대출을 해주려다가 단박에 본점에서 '지점을 폐쇄하고 현금지급기로 대체하겠다'는 위협을 듣는다. 영화는 인간의 일을 언제라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고, 그런 일자리마저 없어 황폐해지는 섬마을의 우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웃음으로 치유하는 균형감각을 발휘한다. 연금으로 먹고사는 마을주민들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로 그려진다. 영화는 주민들이, 드디어 자존심을 되찾게 되는 해피엔딩을 성(性)적인 은유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올해 초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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