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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콘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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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미국 영화 ‘지옥의 영웅들’(1980). 사막전 장면에서 미군 병사의 소총구를 덮고 있는 건 콘돔이다. 모래바람으로부터 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1991년 걸프전 때도 미군은 같은 방법을 썼다. 덕분에 콘돔 제조사의 주가가 크게 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물건이 만들어진 애초 목적은 모래가 아닌 성병 방지다. 콘돔에 관한 최초 기록은 이탈리아 해부학자 팔로피우스의 1564년 저서다. 리넨을 이용한 매독 예방용 콘돔 사용법을 기술하고 있다. 17세기 후반 영국왕 찰스 2세의 주치의 콘턴 박사는 어린 양의 맹장을 이용해 최초의 그럴듯한 콘돔을 만들었다. 소문난 호색한인 왕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콘돔 확산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군인들은 각국 정부의 묵인·방조 아래 세계 전역에서 강간과 매매춘을 자행했다. 일본 육군은 아예 병사들에게 ‘돌격 1호’란 이름의 콘돔을 배급했다. 이를 앞세워 점령국 소녀들을 참혹하게 유린했다. 미국은 제1차 대전 때 콘돔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성병이 창궐하자 제2차 대전 때엔 대량 공급에 나섰다. 이후로도 한동안 콘돔은 ‘남성 보호용 제품’이었다. 콘돔의 피임 기능과 여성 보호 효과가 사회적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81년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발견됐다. 세계보건기구는 콘돔이 에이즈 확산을 80% 이상 줄인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주 이에 반하는 말을 했다. “콘돔 배포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섹스에 대한 도덕적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 정부·언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 70%가 에이즈로 죽는 나라(카메룬)로 가며 할 소리냐”는 것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엔 세계 에이즈 환자의 70%(2200만 명)가 산다. 연간 33만 명의 어린이가 이 병으로 죽는다. 부모를 에이즈로 잃은 고아만 1140만 명이다. 여성 감염자 수가 많은 게 큰 이유다. 빈발하는 내전은 성폭행을 일상화시켰다. 가장을 잃은 여성은 거리로 내몰렸다. 그런 만큼 “도덕성 회복이 답”이란 교황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아프리카 남성 모두 순결을 지향하는 가톨릭적 윤리관을 받아들인다면 효과가 자못 클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는다. 부부 중 한 명이 이미 환자면 어떻게 하나. 보균자인 아이는 훗날 가정을 꾸려선 안 되는 걸까. 이들이 배우자와 안전한 사랑을 나눌 방법은 콘돔뿐이다. 가족과 부부간 정절을 중시하는 교황청이니만큼 이에 대한 해법이라도 마련해 둔 것일까.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