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참빗부터 시작했죠”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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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11면

유상옥(76) 코리아나미술관ㆍ박물관장(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소문난 컬렉터다. 40년간 민속품ㆍ도자기ㆍ서화ㆍ조각까지 6000여 점을 모아 2003년 서울 신사동에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씨’를 열었다.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아트 작품부터 국보 제284호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같은 문화재도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각종 화장용구, 비녀와 노리개 등 장신구, 미인도와 여인상 등 주로 여성적인 것들이다.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동아제약에 근무할 땐 약 저울 등을 수집하다 화장품 회사로 옮기고 나서 여성용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500원짜리 참빗 하나가 시작이었죠.”
그는 동아제약 공채로 입사해 상무이사를 지내고 라미화장품 사장을 역임했다. 코리아나화장품은 88년 창업했다. 수집 취미 역시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걸 보면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만하다.

“80년대 초 독일 미용그룹 웰라사와 기술제휴를 하러 갔다가 웰라 박물관을 구경하게 됐어요.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물이 있는데, 한국 것은 한 점도 없더군요.”

이듬해 내한한 웰라 사장에게 그는 인사동을 뒤져 참한 경대 하나를 선물했다. 다시 찾은 웰라 박물관 전시실엔 그 경대가 ‘코리아(Korea)’ 팻말을 달고 전시돼 있었다. 세계적 기업을 만들려면 박물관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섰다.

고급스러운 취미로 눈과 마음은 즐거웠지만 몸은 고달팠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브 생 로랑과 기술제휴를 하고 돌아오던 길, 그는 낑낑대며 조각상을 싸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한번은 조각상을 짐으로 부쳤는데 목이 댕강 떨어졌더라고요. 그 뒤론 직접 안고 타죠.”

월급을 쪼개 미술품을 사 대니 주머니가 차 있을 날이 없었다. 월급은 제대로 안 갖다주고 만날 신문지에 뭔가를 둘둘 말아 사 오는 통에 좁은 집은 더 좁아졌다. 뾰로통해진 아내를 거짓말로 달랬다. 20만원짜리 그림을 10만원에 샀다고 하곤 나중에 인사동에 함께 가 비슷한 걸 보여 줬다. 상인에게 그림 값을 물으니 30만원이란 답이 돌아왔다. 아내는 그에게 “그럼 남는 장사네?”라고 반문했단다.

“지금 와 얘기지만, 남기는! 팔아야 남지.”
여태 수집한 것 중 되판 건 단 한 점도 없다. 중견기업 회장이지만 여간해선 비싼 밥이나 술은 먹지 않아 친구들 사이에서 짠돌이로 통한다.
“짜니까 박물관을 세웠지…. 남들이 부동산에 투자할 때 난 수집을 했어요.”

그렇게 세운 코리아나박물관은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옛 미용 유물 전시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이달 말엔 베이징 칭화대에서도 전시한다.
“경제력이 있어도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가 신뢰도가 올라가지 않아요. 외국에서 삼성ㆍLG는 알지만 코리아는 모른단 말이죠. 한국 문화를 알리는 건 기업인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수집품을 박물관ㆍ미술관을 통해 시민과 공유하는 것도 제겐 보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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