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살아있다]사이버문화 진정성에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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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요즈음 유행하는 말중에 '사이버' 라는 접두어가 붙은 말들이 많다.

사이버스페이스.사이버펑크.사이버섹스.사이버컬처등 컴퓨터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에는 모두 '사이버' 라는 말이 붙는다.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 속의 행위를 통해서 일견 자신을 해방시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실제 상황에서 이룰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능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먼 거리를 순간적으로 뛰어넘어 이리저리 다닐 수 있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으며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연애도 하고 유사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버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면 실세계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해방감과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사이버 세계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나 해방감이 얼마나 진정성 (眞情性) 이 있는 것인지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진정성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고통스럽게 땀흘리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마음 내킬 때 쉽게 물러설 수 있다.

남녀가 실제로 만나서 연애하고 살갗을 맞대기까지는 오늘날 세태가 아무리 경박해졌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르고 노력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헤어질 때도 이들 마음 속에서는 온갖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이에 비하면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연애나 섹스에서는 진정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연애는 장난을 넘지 못할 것이고 섹스는 쾌락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화가 실현되어 많은 일이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해도 실제 스페이스에서 실제 행위를 할 때의 진정성은 결코 얻어지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이버문화가 아니라 실체험의 문화가 소중한 것이다.

<이필렬 교수,방송대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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