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방과후학교 학생 몰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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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강사 생활을 접고 학교 교단에 선 남승일 교사가 14일 서울 개포중학교에서 진행된 방과후 학교 수업시간에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이달 14일 오전 서울 개포중학교의 한 교실. 방과후 학교의 첫 수업이었다. 수학을 담당한 남승일(40) 교사가 교실에 들어섰다.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칠판에 ‘구주얘수’를 썼다. 남 교사는 대뜸 “세상의 모든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하고 질문을 던졌다. 학생 12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모였다.

“자, 여기 문제가 있어. ‘구’, (문제가) 구하라는 게 뭐지? ‘주’ (문제에서) 주어진 건 뭐야? ‘얘’, 얘네들(주어진 것)을 어떻게 이용하지? ‘수’ 수학 시간에 배운 게 뭐지?”

그가 학생들에게 얘기하려는 건 수학 문제를 푸는 방식이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수학 시간에 배운 기본 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알기 쉽게 전달한 것이다.

은광여고 기간제 교사인 남 교사는 서울 강남구 방과후 학교의 스타다. 그는 2년 전 방과후 학교 수업을 맡은 이후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수업을 들으면 결석하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다. 개포중 최윤옥(49·여) 부장교사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낮은 교사를 2개월 단위로 걸러내는 평가 시스템 속에서 1년간, 400시간의 방과후 학교 수업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 교사는 학원가 인기 강사 출신이다. 서울 목동의 유명 단과학원에서 8년간 강의했다. 수강 인원 3~4위를 달리던 그는 5년 전 회의감에 빠졌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인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인가’. 그는 강사 생활을 접고 기간제 교사의 길을 택했다. 수입은 5분의 1로 줄었다. 그러나 그는 “학생과의 소통을 통해 가르침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그리고 방과후 학교에서 학원 강사를 하며 얻은 노하우를 쏟아붓는다.

“학원 강사들은 생존을 위해 밤낮없이 공부해요. 잘하는 강의를 찾아다니며 벤치마킹하지요. 인터넷 강의도 빼놓지 않고 참고하고요.”

‘구주얘수’라는 말도 숱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먼저 수업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부터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말 속에 ‘교사 경쟁력’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는 듯했다.

남 교사가 방과후 학교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강남교육청이 우수 교사를 발굴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려 노력한 결과다. 강남 방과후 학교에 나오는 학생 수는 3년 전만 해도 서울 지역 최하위권이었다. 사교육 시장에 밀려 외면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참가 학생 수가 압도적 1위로 올라섰다. 이달 참여율 45.9%로 사교육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 방과후 학교의 강점은 체계적인 관리다. 퇴역 군인·경찰 출신의 ‘배움터지키미’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결석 이유를 묻도록 한다. 또 교사들은 매 학기 성적표와 함께 학생의 수업 태도나 수업 이해도 등을 꼼꼼히 메모해 가정으로 보낸다. 이렇게 쌓인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믿음은 방과후 학교를 살리는 힘이 되고 있다.

정선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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