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베이징대 한국어과 도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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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 베이징(北京)대 한국어학과 주변은 요즘 잔치 분위기다. 1945년 베이징대에서 한국어(당시엔 조선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 64년 만인 올 봄학기부터 한국어학과가 어엿하게 독립 학과로 승격됐기 때문이다. <본지 3월 18일자 43면>

그러나 한국어학과 승격의 숙원을 이루는 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왕단(王丹·38·여) 주임(학과장)은 그제부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목이 붓고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학과 승격을 위해 1년 이상 뛰어다니며 누적된 피로가 곪아 터진 것이다. 단과대인 동양언어학부 부속 전공 과정을 독립된 학과로 만드는 데 왕 주임은 혼신의 정열을 쏟아 부었다. 세 살배기 딸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학과 승격 여부를 놓고 오랫동안 단과대 측과 줄다리기도 해야 했다. 학교 내부의 이견을 해소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베이징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온 원로 교수들이 “한국어과를 반드시 승격시켜 달라”고 하던 당부를 버팀목 삼아 버텼다. 힘들 때면 “한국어학과 독립은 한국(서울대 국어교육학과)에서 한국어 연구로 중국인 1호 박사가 된 나의 사명”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결국 오랜 산통을 끝내고 마침내 한국어학과가 출범하면서 왕 주임은 꿈을 이뤘다. 그러나 뛸 듯이 기뻐해야 할 시점이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무겁다.

독립된 학과를 만들었지만 앞으로 학과를 운영해 나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때문이다. 모양새에 걸맞게 내실 있게 운영하려면 적잖은 재원이 필요한데 국립대의 재정 지원은 한계가 있다. 한국어학과의 승격 노력이 첫 고배를 마셨던 1999년 일본어학과는 먼저 독립 학과로 승격됐다.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베이징대를 일본에 우호적인 학문 연구 메카로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학과 졸업생들은 중국 사회에서 반일 감정을 완화해 주는 숨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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