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 스님의 아들 일당 스님, 미수 전시회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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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왜 그리느냐고요? 이것도 타고난 팔자죠.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면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미수전(米壽展)을 앞둔 일당 김태신(사진) 화승(畵僧:그림 그리는 스님)의 복잡했던 일생 한가운데에는 어머니인 비구니 일엽(본명 김원주, 1896∼1971) 스님이 자리 잡고 있다. 일엽 스님은 일제 강점기 유학파 출신 문인으로 화가 나혜석과도 절친했던 신여성이었다. 춘원 이광수의 연인이었다는 설도 있다. 출가 뒤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수행했다.

일당 스님은 일엽 스님이 출가 전 일본 명문가 아들인 오다 세이조(太田淸藏)를 만나 낳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겨뒀던 아들이다. 그는 2002년 출간한 자전 소설 ‘어머님 당신이 그립습니다’에서 일엽 스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를 어머니로 부르지 말고 스님으로 불러라”라며 당시 열네 살이던 자신에게 매정하게 대해 눈물만 흘렸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황해도 해주에 있는 부친 친구 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뒤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해 이토오 신스이(伊東深水) 교수를 사사했다. 6·25전쟁 직전 해주를 다시 찾았지만 친일파로 몰려 고초를 겪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화가로 활동했다. 90년 한국에 정착했고, 66세에 출가해 그림 그리는 스님인 화승으로 살아왔다.

22년생인 그가 미수를 맞아 화집을 발간하면서 25∼31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경남 양산의 법수사에 머물고 있는 일당 스님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요즘도 하루에 여덟 시간을 그릴 때도 있다”며 “어머니도 가끔 그린다”고 말했다. 한 해의 절반은 일본에서, 나머지는 한국에서 산다.

그의 그림은 석채(石彩)로 그리는 동양화로, 일본 채색화풍이다. 동양화 중 문인화로 대변되는 남종화가 아닌 북종화 계통이다. 북종화는 본래 사실적인 이미지를 담지만, 그는 불화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특유의 조형감각을 빚어낸다. 전시엔 시대별 대표작 120여 점이 나온다. 055-382-2108.

글=권근영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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