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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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무슨 일인가.

내가 탄 택시가 제법 빠르게 좌회전을 하는게 느껴지고 이어 왜엥, 왜엥, 왜엥, 하는 구급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귓문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혼몽한 상태에서도 구급 사이렌 소리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꼼짝 않고 그것을 듣고 있자니 마치 내 자신이 지금 구급차에 실려 어디로인가 위태롭게 이송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하게 울려대는 구급 사이렌 소리를 듣다 못해 나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전방 칠팔미터쯤 앞, 희붐하게 젖은 어둠속에서 이제 막 119구급차량이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니 불이 꺼지고 셔터가 내려지긴 했지만 아주 익숙한 동네라는 걸 단박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잃어버린 지평선' 과 '짱구네 식당' 이 있는 동네, 바로 그 지점을 나는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망연한 표정으로 나는 다시 전방을 내다보았다.

다른곳에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건물에서 구급차가 내려오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내가 취기와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지난밤, 누군가 생사를 다투는 고통에 밤새 시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갑작스럽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군가 죽음의 고통과 싸우는 순간에 쾌락과 환상의 난 바다를 부유하고 있었다는 것… 죄스러워라.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어던지고 나는 곧장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좌변기에다 머리를 처박고 무엇인가를 토해내기 위해 목구멍 깊숙이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하지만 별로 먹은게 없어서인가.

끈끈한 타액 이외엔 아무것도 넘어오느게 없었다. 굵은 눈물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목구멍을 들쑤셔댔지만 마찬가지, 쓰디쓴 위액 이외에 더이상은 아무것도 넘어오지 않았다.

"지금 네가 토해내고 싶어하는게 뭔지 알기나 하냐… 이 한심한 영혼아. " 눈물을 질금거리며, 변기통에다 머리를 처박고 나는 쥐어짜는 소리를 뱉아냈다.

그렇게 몇분쯤 더 앉아 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입을 헹구고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추어블 정제로 된 아스피린 두 알을 씹어먹고 던지듯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하지만 왜엥, 왜엥, 왜엥, 귓전으로 여전히 구급사이렌 소리가 밀려드는 것 같아 도무지 눈을 감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눈을 뜨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반쯤 몸을 일으켰다.

안구가 뻑뻑해지면서 깊은 현기가 느껴지는 이런 순간, 인간의 정신이란 얼마나 비정하고 잔혹스런 육신의 가해자인가.

쓰러지듯 다시 자리에 누워,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마지막 구원의 방법이라도 되는양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에페푸페카케… 히로 호로 헤로… 지지 사크 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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