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사실 3월 위기설이 제기했던 우리 경제의 불안 요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위기설이 지나간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위기설은 처음부터 작문에 불과했고, 지나고 보면 확실히 허풍이었다. 지난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9월 위기설이 그랬던 것처럼. 진짜 위기는 미리 예고하고 오지 않는다. 소리 없이 다가와 세계경제를 뿌리부터 뒤흔든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렇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붕어빵엔 붕어가 없는 것처럼 위기설 속엔 위기가 없다.

그런데도 때만 되면 어김없이 위기설이 등장하고, 정부는 이를 진화하느라 법석인 것은 왜일까. 우리 마음속에 위기설의 불씨를 담고 있어서다. 그 불씨는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다. 한국 경제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며, 기어코 다시 일어설 것이란 믿음이 확고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밖에서 툭 던지는 근거 없는 위기설 한마디에도 시장이 널뛰고 온 나라가 휘둘리는 것이다.

일부 외신이나 신용평가회사가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거나, 의도적으로 한국을 매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한국을 동유럽 수준의 부도 위험국가로 싸잡아 보도한 영국 언론을 두고 우리 정부 관계자가 영국 재무장관에게 항의했다는 것도 코미디다. 영국 정부가 언론을 동원해 한국 경제를 흔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정부 관계자들이 영국의 해당 언론사를 방문해 기사의 잘못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것이야 뭐랄 것이 없다. 뒤늦게 외신 브리핑을 확대하고 외신 전담 공보관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위기설이 해외 언론에 대한 홍보 부족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해외 홍보를 강화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위기설을 잠재울 수 없다. 위기설의 진원지는 해외가 아니라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통계숫자를 잘못 인용하거나 사실 확인을 게을리해 한국 경제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하거나 오보를 낸 외신은 제쳐 두자. 사실이 아니라면 떳떳하게 항의하고 정정 보도를 요청하면 그만이다. 아예 싹 무시해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보다는 그런 외신 보도 한 줄에 일희일비하는 우리 자신이 더 문제다. 외신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과거처럼 국내 언론에 비해 월등히 높은 취재력과 정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니 외신에 뭐가 났다고 법석을 떨 필요는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발 위기론이다. 외신에 영어로 난 기사도 잘 뜯어보면 국내 인사의 발언이나 한국에서 떠도는 얘기를 인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기론의 생성과 확산 과정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국내 어디선가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을 부각시킨 비관적인 관측이 나온다. 이것이 인터넷과 금융가의 사발통문을 타고 퍼져 나가면서 그럴듯한 논리를 갖춘다. 위기설이 국내 언론에 언급될 즈음 외신을 타고 다시 역수입된다. 그러면 위기설은 흡사 국제적으로 공인된 학설인 양 설득력을 갖추고 증폭된다. 국내 외환·자본시장이 요동을 치고, 투기 세력은 위기설을 한껏 부추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한심한 위기 놀음에 놀아날 것인가.

외신 홍보도 좋지만 지금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근거 없는 위기설과 외신 보도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위기설에 불쏘시개를 제공하는 불안 요인을 제거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아예 위기설이 나오지 않도록 경제 체질을 튼튼히 하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제가 한 말에 제가 놀라는 어리석은 짓은 제발 그만둘 때도 됐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