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김씨 실종은 언제?"…커지는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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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김선일씨는 언제 납치됐을까.

김씨의 납치 시점이 지금까지 알려진 지난 17일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앞선 5월 30일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부가 확인에 들어감에 따라 최종결과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라크 파병 결정 이전에 김씨가 납치됐고 그동안 누군가가 납치 사실을 숨겨왔다는 점에서 파문이 예상된다.

현재까지는 미국 당국이 17일 김씨의 납치 사실을 알고도 한국 정부가 18일 파병을 결정한 이후인 20일에야 늑장 통보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이때문에 납치 사건 해결의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에 지장을 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영진 외교부차관은 23일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씨 납치시점과 관련해 "가나산업 김천호사장이 납치시점을 처음엔 6월17일이라고 했다가, 두번째는 6월15일, 세번째는 5월30일이라고 진술했다"며 "김사장의 최종진술이 가장 정확한 것으로 보고 확인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납치시점 의혹 보도=KBS 1TV는 22일 밤 "김선일씨와 가나상사 김천호 사장을 잘 아는 바그다드 현지 교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선일 씨로부터 모든 연락이 끊긴 날은 지난달 31일"이라고 보도했다.

현지 교민 김모씨는 "어제가 납치된지 3주가 된다고 (가나상사) 직원이 'MUST BE JUST 3 WEEKS'라고 영어로 이야기했다"고 KBS는 전했다. 이는 가나상사 대표 김천호씨가 밝힌 납치일 보다 무려 17일이 앞서는 것이다.

KBS는 또 현지교민 이모씨와 인터뷰를 통해 "알 자지라 보도로 한국에 알려졌는데 이전에 (카타르 대사관에) 신고된 걸 확인했다"며 "실제 납치 사실이 방송되기 전에 이미 현지 공관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KBS는 이어 "김천호씨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이 기간에 대여섯 차례 무장세력과 접촉하며 석방협상을 직접 진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도 오락가락=한편 한국 정부도 김씨의 납치 날짜.정황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김사장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등 오락가락 하고 있다.

22일 외교통상부.국방부 등 정부 관계 부처와 열린우리당 통일외교통상 및 국방 분과 소속 의원들 간의 정책간담회에서 정부 당국자는 "김씨의 납치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았던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며 "피랍 날짜가 17일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했다고 한 참석 의원이 전했다.

다른 참석자는 "정부는 (17일) 이전에 납치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더라"며 "정부가 모든 것을 김 사장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정책간담회에선 김 사장이 미군을 통해 김씨의 피랍 사실을 알게 됐다는 부분에 대해 의원들의 추궁이 집중됐다.

김근태 의원은 가나무역 김 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거론하며 "미국이 김씨 피랍 사실을 17일 파악했는데도 우리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면 한미동맹 차원에서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정의용 의원도 "최소한 사후에라도 (정부가) 미국 측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커지는 의혹= 지금까지는 이라크 내 미군이 김씨가 납치됐던 당일(17일)에 알고도 한국 정부 및 군 당국에 즉각 알리지 않았던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됐었다.여야 의원과 시민단체들은 "늑장 통보를 해명하다"고 주장하며 한미 동맹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 5일 전(16, 17일) 미군 쪽으로부터 김씨가 근무하던 (팔루자) 미군기지를 떠나 바그다드로 향한 뒤 소식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어제(20일) 미군이 급히 보자고 해 모술에서 대책을 협의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KBS보도가 사실이라면 가나상사 김 사장은 김씨가 5월 31일 납치된 이후 단순 강도로 생각해 자체 구출 노력을 했왔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납치 사실이 알려지면 현지 사업이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해 현지 공관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예상도 할 수 있다.

KBS 보도에도 교민들은 "협상과정에서는 몸값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납치 무장세력에 대한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이어 한국군 추가 파병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급변한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당국이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 이후 늑장 통보,초기대응이 늦어졌다는 비판은 일단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 해명 촉구=참여연대는 22일 성명을 내고 "가나무역 김사장은 김씨 피랍사실을 한국정부가 공식 확인한 4 ̄5일 전에 이미 이 사실을 통보를 받았으며 김씨를 억류하고 있는 무장단체와 6차례나 협상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는 알 자지라 방송 시점에 이를 확인한 카타르 한국 대사로부터 뒤늦게 김씨 피랍사실을 통보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러한 정황은 지난 18일 한국 정부가 추가파병 강행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이라크 파병철회 대구경북시민행동은 22일 "미국과 한국정부는 김선일씨 피랍사건 통보를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미군 당국이 김씨의 피랍사실을 알고도 한국 정부에 즉각 공식 통보하지 않은 이유가 우리 정부가 대규모 추가파병 결정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이런 민감한 사안을 고의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타국민의 안전과 외교관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미국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미국은 한국 정부와 한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군 당국의 즉각적인 해명을 요구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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