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맥주 인수전 ‘처음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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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OB맥주 인수전이 오리무중이다. 벨기에 AB인베브사가 매각에 나서자 소주 ‘처음처럼’을 인수한 롯데가 맥주시장에까지 진출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지금은 롯데와 인베브 간 신경전만 날카롭다.

인수전이 교착에 빠진 것은 인베브가 받고자 하는 가격과 롯데가 제시한 금액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 외신에 따르면 인베브는 당초 매각 예상 금액으로 20억 달러(약 3조원)를 기대했다. 롯데는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를 냈다. 그러자 인베브는 OB맥주 실사 초청 대상자를 외국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AEP)와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 두 곳으로 좁혔다. 유력 인수 후보로 꼽히던 롯데를 뺀 것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양측이 수차례 조율했는데, 롯데가 1조6000억원까지 줄 용의가 있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인베브는 최소 2조3000억원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와중에 16일엔 롯데가 OB맥주를 사는 대신 새로 맥주회사를 설립하려 한다는 얘기가 등장했다. 맥주회사를 새로 만드는 데 1조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롯데는 “맥주회사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주류면허를 따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면 진작 신설 법인을 만들지 뭐하러 인수전에 뛰어들었겠느냐”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롯데의 한 임원은 “인베브의 요구 금액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맥주회사를 새로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주류업계에선 롯데의 움직임을 인베브와의 가격 협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배수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주류면허 문제 외에도 하이트와 OB가 양분하고 있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롯데가 새 브랜드로 덩치를 키우는 게 만만치 않다는 이유다.

양측의 줄다리기를 지켜보는 사모펀드도 분주하다. KKR 측은 최근 국내 주류업계 인사를 접촉해 OB맥주의 적정 인수 가격과 한국 맥주시장의 전망을 물었다. 일각에선 향후 롯데가 사모펀드들에 컨소시엄을 제안할 경우 지분을 나누는 형태로 인수전이 전개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 맥주사업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모펀드로선 혹시 롯데가 독자적으로 맥주사업에 나설 경우 OB맥주를 인수해도 재미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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