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총비서 된 김정일 개방정책등 통해 대외신뢰 회복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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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의 김정일 (金正日) 노동당비서가 8일 총비서에 취임함으로써 고 (故) 김일성 (金日成) 주석의 후계자로 정식 인정받게 됐다.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은 오래 전부터 기정사실화 돼왔다.

그러나 취임 시기가 좋지 않다.

경제 부진과 식량 위기가 계속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이집트대사의 망명.한반도 평화 4자회담 예비회담 중단등도 권력 승계 축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후 3년간의 애도기간을 끝냈다고 선언한 이상 권력 승계를 미루면 오히려 내부 혼란과 김정일의 역부족을 내비치게 될 것이라고 지도부는 판단했을 것이다.

12월 한국의 새 대통령이 나오기 전에 미리 권좌에 앉아 남북대화에 선수를 치자는 계산도 있었을지 모른다.

민주국가의 선거절차와는 다른 특이한 선출방법이나 부자간의 권력 승계에 위화감이 들지만 세계가 '김정일 지도하의 북한' 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일과 북한 지도부에 몇가지 주문을 하고 싶다.

첫째, 개혁.개방정책의 계속과 강화, 그리고 대외협조 노선의 추진이다.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시장경제화.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속에선 개혁.개방 외엔 생존의 길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때 '사회주의의 우등생' 이라 불렸던 북한의 경제가 어렵게 된 것은 폐쇄적인 체제에다 정책 운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기보다 현실적인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

둘째, 내외에 정책을 명시하라는 것이다.

식량부족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4자회담이나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과의 대화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지금까지 북한의 어떤 선전에도 경제.외교정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은 없었다.

셋째, 김정일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스스로 말해야 한다.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육성을 들려주는 일도 거의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해외에서 새 지도자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점도 그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의혹을 없애려면 국가의 개방도와 투명도를 높이는게 중요하다.

일본은 이웃국가로서 북한의 동향에 무관심할 수 없다.

많은 일본인이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이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불신이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일.북한 관계 개선에는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다행히 양국은 일본인처 고향 방문이나 수교 교섭의 조기 재개를 합의하는등 관계 개선을 위한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일본정부는 9일 각료회의에서 유엔을 통한 식량지원 실시를 정식결정했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북한측의 명확한 대응이 눈에 띄지 않으며, 미사일 개발 의혹도 심화되고 있다.

북한은 우선 이러한 의혹들을 해소하는데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리 = 김국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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