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일 시대의 남북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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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마침내 북한 김정일 (金正日) 이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했다.

지난 3년3개월 동안 공석이었던 북한의 최고위직이 채워진 것이다.

그동안 김정일이 최고위직을 계승하지 않은 것을 두고 그의 권력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같은 억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데서 그 첫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은 당 - 국가체제다.

이 체제에서 공식적인 최고위직은 당총비서다.

김정일의 '등극' 은 그의 권력이 확고부동하다는 것과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두번째 의미는 북한에서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 것이며, 그에 걸맞은 정책변화의 의지 표명이라는 데 있다.

물론 김정일이 총비서에 취임했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북한체제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정책노선에 심대한 변화가 오기도 어려울 것이며, 더욱이 악화된 경제난과 식량난이 갑자기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남북한 관계에 본질적으로 큰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만약 변화가 있다면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것과 개방정책을 조금 더 확대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특히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이번에 북한은 기존 정무원의 부 (部) 나 위원회를 성 (省) 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정무원 각 부서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북한의 정무원은 경제나 외교.민생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조직이지만 당이나 군에 비해 권력은 낮다.

따라서 정무원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함으로써 경제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

이같은 조직개편과 아울러 앞으로 북한은 김일성 주석과 일하던 원로들을 일선에서 과감히 후퇴시키고 김정일시대에 맞는 새로운 젊은 간부진을 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작 김정일 총비서시대의 출범이 가져다줄 변화는 대외관계에서 발생할 것이다.

대외관계에서 김정일은 현재 당면한 급박한 식량문제와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현안인 4자회담 예비회담을 매듭지으면서 가급적 많은 양의 식량을 지원받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본회담에도 임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북.미 (北.美) 관계와 북.일 (北.日) 관계, 북.중 (北.中) 관계에서 더욱 책임있는 직위를 가지고 풀어 나가야 한다.

그 최종목표가 북.미수교와 북.일수교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남북관계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대남정책의 변화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지난 8월4일 김정일이 발표한 최초의 통일관련 저작에서 그가 "남조선 당국자들이 어떤 자세와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지켜 볼 것" 이라고 한 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남한의 대북정책 여하에 따라 김일성 (金日成) 사망 이후 견지해온 당국자간 대화 거부의 자세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현재 북한은 4자회담 외에도 경수로 건설문제, 나진 - 선봉 개발문제, 북.일수교를 통한 대일 (對日) 청구권 자금문제등 주변국들과 매우 많은 현안에 둘러싸여 있다.

이를 풀 정책의 핵심고리는 남북관계에 있다.

요컨대 김정일총비서는 남북관계의 변화를 통해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남북한 고위급회담 또는 남북 정상회담의 재논의도 예상된다.

'김정일 총비서' 시대 북한의 대외행보는 더욱 적극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남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도록 유인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에 즈음해 남한의 대북 (對北) 정책 원칙, 즉 흡수통일의 의도가 없으며 북한의 전향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협조할 수 있다는 정도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 대북관계에서 더욱 유연한 입장을 견지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정책을 추구해야 하겠다.

박재규 <경남대총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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