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동성 커플 건강보험 혜택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고민에 빠졌다. 동성 커플 때문이다. 오바마는 지난 대선 때부터 동성애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 신장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해 와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취임 직후엔 남녀 간 결합만 합법적 결혼으로 규정한 연방법원의 결혼보호법을 폐지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그 덕에 동성애자와 진보진영으로부터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그도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3일 보도했다. 발단은 지난해 7월 연방법원 공무원인 캘리포니아 출신 동성애자 두 명이 낸 소송에서 비롯됐다. 연방정부가 결혼보호법을 들어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지 않자, 이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9개월간의 심리 끝에 지난달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동성 커플의 손을 들어줬다. 공무원의 동성 배우자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보스턴에선 이에 고무된 8쌍의 공무원 동성 커플이 정부를 상대로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연방정부 인사관리처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법원 판결이 1999년 제정된 결혼보호법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인사관리처는 “연방정부로선 법규정을 있는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결혼보호법은 이성 간 결합만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연방정부 공무원의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데 10년 동안 6억7000만 달러(약 1조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사관리처로선 부담이다.

보수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미국의 가치’ 개리 L 보어 회장은 “오바마 정부가 동성 커플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면 대중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는 보수세력을 뭉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온건파라는 오바마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진보진영과 동성 커플도 행동에 나섰다. 연방정부가 법원 결정을 조속히 이행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법원에 청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한발 물러서 있던 의회에서도 진보파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코네티컷주 조셉 리버만 상원의원과 위스콘신주 태미 볼드윈 하원의원은 “동성 커플 공무원의 건강보험 지원을 지지하는 법안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정이 이쯤 되자 오바마로선 난처해졌다. 법원 판결에 따르자니 보수진영과 공화당의 반발을 부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앞으로 경제위기 탈출이나 교육·건강보험 개혁에서 공화당 지원이 절실한 그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존 정부 입장을 고수하자니 진보진영의 이탈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입장 표명을 마냥 늦출 수도 없다. 법원 판결이 이미 났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되든 오바마의 결정은 앞으로 미국 사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오바마에게는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정경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